전곡리선사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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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곡리 선사유적 – 발견
관리자 - 2015.06.08
조회 2131
전곡리 선사유적 소개
1978년 주한미국이 구석기 유물을 처음으로 발견

전곡리 선사유적은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전곡리에 있는 전기구석기시대 유적으로, 1978년에 당시 동두천주둔 미군인 그렉 보웬(Bowen G.)에 의하여 처음 발견되었다. 유적은 현재 전곡읍 남쪽 한탄강이 감싸고도는 현무암 대지 위에 분포하고 있으며, 1979년 최초의 고고학 발굴조사 이후 그해 10월에 국가사적 268호로 지정되었다. 이후로도 2009년까지 모두 17차례에 걸쳐 고고학 조사가 실시되었다.

1978년 주한미국이 구석기 유물을 처음으로 발견 사진
강을 따라 신생대 제4기에 분출된 현무암이 분포

전곡리 유적은 추가령지구대의 서남부에 위치하고 있다. 전곡리 일원을 포함한 한탄강과 임진강 연안지역에는 강을 따라 신생대 제4기에 분출된 현무암이 분포하고 있다. 이 현무암은 철원·평강지역에 산재하는 소분화구 중 오리산(鴨山)으로부터 급격하지 않은 분류(噴流)의 양상으로 흘러 고기(古期) 한탄강·임진강을 따라 분포하는 저지를 메우며 하류인 문산까지 진출하여 있다. 이 현무암 분출은 중부홍적세동안 여러 차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전곡리에서는 2매가 관찰되고 있다. 연대측정 결과 전곡리의 현무암 2매 중 하부의 것은 대략 60만년 전후, 그리고 상부의 현무암은 30만년 전후에 분류된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시아 최초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 발견

전곡리유적은 한탄강이 현무암대지 위에 퇴적층을 쌓는 동안, 단속적으로 출현한 고인류가 사냥과 채집 생활을 하면서 형성되었을 것으로 보인다.퇴적층 속의 유물은 일부 지질학적인 변동으로 재퇴적되었거나 퇴적 시에 하천이나 지표상의 물, 그리고 땅속에서 생활하는 벌레와 식물뿌리 등의 생물학적인 요인에 의해서 변형되기도 하지만 몇몇 지점에서는 고인류의 직접적인 행위파악이 가능한 석기제작소 등의 생활면이 잘 남아있기도 하다.
전곡리유적에서는 현재 17차까지 이루어진 발굴조사를 통해서 6,000점 이상의 석기가 출토되었는데, 석기는 석영맥암과 규암을 이용한 것이 거의 대부분이며 이외에도 현무암, 편마암 그리고 운모편암도 소량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재료들은 거의 모두 당시의 하상에 존재하던 강자갈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1m 정도 크기의 냇돌(川石)도 있다.
가장 특징적인 석기는 아슐리안형의 주먹도끼(hand-axe)들인데 양면가공된 것과 단면가공된 것이 있다. 평면이 타원형인 것과 첨두형인 것이 모두 있으며, 이들 일부는 몸통이 두텁고 큼직한 박편흔으로 덮여 있어서 아프리카의 상고안(Sangoan) 석기공작과 형태적인 유사성이 있음이 지적되고 있다. 주먹도끼 외에도 가로날도끼(Cleaver)와 뾰족끝찍개(pick) 등의 대형석기가 존재하고 있다.

전곡리 선사유적의 중요성
세계 학자들의 인식 : 새로운 발견과 새로운 학설의 가능성

전곡리에서 발견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들은, 1970년대 말까지 유행한 구석기문화를 주먹도끼의 존재 유무를 통해 동아시아와 아프리카·유럽으로 이분하던 모비우스(H.Movius Jr.)의 학설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증거로, 세계 구석기학계의 고인류에 대한 문화적 발전과정 연구에 새로운 면을 제시한 바 있다. 그리고 동아시아에서도 구석기공작에 대하여 새로운 각도에서 이해하려는 시도를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한반도 내에서는 빈약한 전기구석기시대의 석기공작 연구에 풍부하고도 획기적인 자료가 되었을 뿐 아니라 중부홍적세 동안 고인류의 생활 양상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였다.

세계 학자들의 인식의 대한 고고학적인 조사에 실시
전곡리 선사유적의 풍경
공공누리 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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