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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시대의 자연환경

구석기 시대는 현재 시점에서 보면 아주 먼 옛날이기 때문에 그 때의 자연환경이나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잘 알기 어렵다.

지구 대륙이 어떤 상태였는지는 연구 결과 구석기 시대는 신생대 제4기 홍적세와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신생대는 공룡이 지구의 주인이던 중생대 다음 시대- 중생대 전의 시대는 삼엽충 같은, 지금은 사라진 옛 생물이 살던 고생대이다. 고생대를 제1기, 중생대를 제2기라고 하고, 신생대는 다시 크게 두 시기로 나누어 앞 시기를 제3기, 그 뒤를 제4기라 한다. 제4기도 다시 두 시기로 나뉘는데, 먼저 홍적세가 있었고 그 다음부터 현재까지를 충적세라고 한다. 우리 인류는 바로 이 4기 홍적세 때부터 발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홍적세는 이 시기에 홍수가 많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며, 흔히 빙하시대라고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 시기에 지구 전체가 냉동 상태였던 빙하기가 여러 차례 있었고, 그 사이 사이에 얼음이 녹는 간빙기를 거쳤기 때문이다.

빙하기가 되면 지구의 물(수분)이 상당히 많이 얼음으로 변해 북극과 남극 지방을 중심으로 쌓이게 된다. 아주 따뜻한 지방이 아닌 곳에서는 바닷물조차도 얼어버려 바닷물 양이 많이 줄어들어서, 바닷물의 표면 높이가 현재보다 매우 낮아지게 된다. 빙하기때는 현재보다 수백 미터 정도 바다의 높이가 낮았다고 한다. 지금과 그때가 다른 점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커다란 차이는 바로 이런 해수면이 낮아져 대륙이 서로 육지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현재 바다는 지구 겉면적의 3/4 인데, 빙하기에는 반대로 육지가 바다보다 더 많은 부분을 차지했었다.

이 당시에는 아시아의 북쪽 끝 부분인 시베리아와 북아메리카 땅 사이에 있는 베링 해협도 육지로 연결되어 있었고, 이곳을 통해 아시아 동북 지역에서 살던 몽골 인종이 북아메리카로 건너가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우리나라 한반도 근방에서는 서해(황해)가 육지였기 때문에 중국과 연결됐고, 일본까지도 걸어서 갈 수 있었다.

최초의 인간은 어디서 나타났나?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발견되었다.

그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원숭이들이 아니었고, 그들의 조상들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우리는 원숭이에서 사람으로 넘어온 것이 아니다. 지금의 원숭이들과 우리는 천만년 혹은 그 이상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들의 공통된 조상인 영장류를 만날 수 있다.

지금의 인류들은 침팬지, 고릴라, 그 중에서도 특히 침팬치와 아주 가까운 사촌들이다.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

지금으로부터 1만 년 전쯤까지 사람들은 이렇게 들판이나 바위산에서 돌멩이나, 바윗돌을 깨거나 떼어 내어 도구를 만들어 살아갔다. ‘돌로 만든 도구’를 ‘석기’라고 하는데, 처음에는 세련되게 돌을 갈아 매끈하고 더 쓸모 있게 만들지는 못했다. 그래서 뒤에 올 새로운 석기의 시대, 곧 ‘신석기 시대’에 비해 더 오래 된 석기를 사용한 시대라는 뜻으로 ‘구석기 시대’라고 부르게 되었다. 구석기시대는 인류가 좀 거친 석기를 사용해 자연에 대처해 나간 시기로서 구석기 사람들이 사용한 석기를 큰 돌에서 깨거나 떼어 만들었다 해서 ‘뗀석기’라고 부른다.

이후 1만 년 전쯤부터 인류는 단순히 떼어낸 것에서 나아가 돌을 갈고 다듬어서 전보다 더 다양하고 새로운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신석기 시대의 시작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 사이의 ‘중석기시대’도 존재한다.

당시의 지구상에서 사람들은 기후와 환경이 다른 이곳저곳에 흩어져 살아갔다. 따라서 저마다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살았고 또 사람들의 생김새도 서로 달랐다. 과일 나무가 풍성한 너른 들판에서 토끼와 같은 작은 짐승의 고기를 잡아먹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험준한 산이 많은 땅에서 노루처럼 날쌘 짐승을 잡아먹고 호랑이처럼 용맹한 짐승과 맞서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구석기시대보다는 발전했지만 완전히 신석기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없는 시대를 산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이 살았던 시대를 중석기 시대라고 구분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고인류의 발견

지난 1856년, 독일의 네안데르탈이란 골짜기에서는 구석기 시대에 살았던 사람의 뼈가 발견되었다. 그 뒤 프랑스의 크로마뇽에서도, 중국의 베이징[北京 북경]에서도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뼈들이 발견되었는데 연구결과 구석기시대 사람의 뼈로 밝혀졌다. 학자들은 이들을 가리켜 각각 발견된 곳의 지명을 따서 네안데르탈인, 크로마뇽인, 베이징 원인 [原人:돌로 석기를 제작한 단계의 사람을 가리킴, 호모 에렉투스(곧선 사람) 단계]라고 부르게 되었다. 베이징 원인보다 네안데르탈인이, 네안데르탈인보다 크로마뇽인이 더 나중 시대에 살았던 것으로 보이고, 크로마뇽인은 현재의 우리(현생 인류)와 같은 인간으로 보고 있다.

현재까지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가운데 가장 오래 된 것은 케냐와 에티오피아 접경에 있는 터카나호수의 서쪽 기슭인 로타감 지역에서 발견되었는데 그 나이는 550 -500만년정도로 추정된다. 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여러 종이 있는데, 대략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로부스투스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는 일찍 (450만 년 전) 나타나 일찍 사라졌지만, 아프리카누스와 로부스투스는 늦게까지 존재했다. 아프리카누스는 대개 250만 년 전에 , 로부스투스는 약 200만 년 전에 등장했고, 둘 다 130-120만 년 전 무렵까지 아프리카에서 호모 에렉투스와 공존했을 것으로 보인다.

원숭이에서부터 호모사피엔스까지

베이징 원인, 네안데르탈인, 크로마뇽인의 화석들이 발견된 뒤 고고학자들은 여러 곳에서 고인류의 뼈를 발견했다. 최근 아프리카의 차드에서 발견된 인류 조상의 화석(투마이)은 연대가 약 700만 년 전까지 올라간다.

거의 원숭이와 같았던 이전의 조상에 비해 분명히 다른 형상을 보이는 뼈는 아프리카에서 약 450만 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보이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것이다. 그러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도 지금의 인류보다는 고릴라, 침팬지 같은 유인원에 더 가까운 상태였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라는 이름도 라틴어로 ‘남쪽의 원숭이’란 뜻이다. 이 화석 외에 약 200만 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보이는 라틴어로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 : 손쓴 사람)라는 이름이 붙은 뼈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아프리카 외의 지역에서 이렇게 오래된 인류의 화석이 발견되지 않는 것으로 보면, 이때까지의 인류는 아프리카라는 비교적 따뜻한 기후에서만 살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160만 년 전쯤, 호모 하빌리스보다 나중에 살았던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 곧선 사람)의 뼈와 유물은 아프리카뿐 아니라 아시아와 유럽에서도 발견되었다. 앞에서 이야기한 베이징 원인도 호모 에렉투스의 한 종류이다. 이들은 허리와 다리를 구부정하게 굽히고 다닌 그 전 시대의 인류보다 더 곧바로 서서 걸어다녔고, 불도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약 40만 년 전에 드디어 현생인류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슬기 사람, 고인)가 나타났다. 앞에서 말한 네안데르탈인이 바로 호모 사피엔스의 한 갈래이다. 적어도 10만 년 전부터 사람들은 지금처럼 말로 자기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고, 서로 의사소통을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뇌의 크기도 전보다 매우 커졌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네안데르탈인과 같은 호모사피엔스도 지금의 현생인류와는 다른 종이다.

현재의 인류를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 : 슬기 슬기 사람)라고 하는데,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맨 처음 모습이 약 4만 년 전에 살았던 크로마뇽인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한반도의 빙하시대

지금까지의 조사 결과로 보면 우리나라의 구석기시대 처음에는 빙하가 지금의 백두산 일대까지 내려왔던 것으로 보인다. 함경북도 동관진유적에서 아주 추운 지방에서 살았던 동물인 털코끼리(매머드) 뼈가 발견된 것이 이를 말해 준다.

당시 한반도의 기후는 꽤 추운 편이라, 우리나라의 숲은 잣나무(전나무), 소나무와 같이 추운 곳에서 자라는 침엽수의 숲으로 덮여 있었다. 다시 언 땅이 녹는 간빙기가 오면 날씨가 따뜻해져 지구 전체의 얼음이 녹아 바다로 흘러들게 되고, 자연히 낮아졌던 바다 표면이 수백 미터나 높아지고, 한반도는 중부 지방까지 따뜻하고 습기 찬 기후로 바뀌게 된다. 숲은 따뜻한 기후에서 자라는 자작나무, 참나무와 같은 활엽수로 들어차게 되고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하이에나, 원숭이, 코끼리와 같은 더운 지방에 사는 동물이 한반도 곳곳에서 살았다.

지구가 한 번 얼었다가 다시 녹는 데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구석기 시대에는 이렇게 얼고 녹기를 여러 차례 했다고 하니 그 기간이 얼마나 길었을지 짐작해 볼 수 있다. 그 동안 수백만 년에 걸쳐 지구 전체의 기후 환경도 많이 바뀌게 되었다. 이 기간은 현재까지의 인류 역사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인류 역사의 99% 이상을 구석기시대가 차지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한반도의 최초인류

한반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중국 동북부 지방에서 발견되는 고인류화석과 구석기유적으로 미루어 보아 대체로 100만 년 전까지 올라가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시기의 고인류는 호모에렉투스 단계로서 지금 우리의 직접적인 조상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으로는 북한의 평양시 상원군 검은모루 동굴 유적의 연대가 약 40만~50만 년 전까지 올라가는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북한 학계에서는 검은모루 동굴 유적이 100만 년 전의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기는 어렵다. 지금 교과서에서는 우리 땅의 구석기 시대가 70만 년 전에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중국에서 베이징 원인이 70만~60만 년 전에 살았기 때문에 이를 기준으로 추정한 것이다.

검은모루 동굴에서는 원숭이, 코끼리, 물소와 같은 짐승 뼈들이 쌓여서 돌처럼 굳은 화석들이 다수 발견되었다. 이처럼 더운 지방에서 사는 짐승들이 살았으니, 그 때는 북한 지역도 매우 더운 기후였을 거라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약 10만 년 전에서 5만 년 전 사이에 지구는 다시 빙하기에 들어갔다. 한반도도 추위 때문에 숲이 줄어들었고, 이 시기의 인류들도 따뜻한 지방을 찾아 옮겨가야 했을 것이다. 다시 수만 년이 흘러 좀 따뜻해졌다가 1만 4000년 전부터 마지막 추위가 닥치게 된다. 그리고 1만 년 전부터는 새로운 간빙기에 들어서게 되었다. 지구를 전체를 덮었던 얼음들이 녹기 시작하고, 지구 전체의 기온이 올라가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한반도에는 지금처럼 4계절의 기후 차이가 뚜렷한 온대기후가 나타나게 된다.

한반도에 살던 구석기 사람들이 먹거리를 얻은 곳은 바로 이러한 빙하기와 간빙기를 거치며 형성된 숲에서였을 것이다. 산딸기, 보리수 열매와 같은 단맛 나는 열매를 비롯해 고사리 같은 산나물 종류나 칡뿌리, 더덕과 같은 뿌리도 그들의 먹거리였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 인간이 섭취하는 주요 영양소는 탄수화물과 단백질, 그리고 지방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초가 되는 영양분은 밥과 같은 탄수화물이다. 우리가 다른 어떤 것보다도 밥을 잘 먹어야 하는 것은 밥에서 탄수화물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구석기시대 사람들도 분명히 이러한 영양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데 구석기 사람들은 어떤 영양소가 어떤 식물에 있다고 미리 알고 생각하면서 먹을거리를 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여러 가지 먹을 수 있는 것을 다 모으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양분을 고루 섭취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차츰 맛이 좋고 몸에 좋은 음식을 알게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들
덕천사람, 역포아이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 된 사람 뼈는 평안남도 덕천시와 평양시 역포 구역 대현동의 구석기 유적에서 나왔다. 덕천 승리산 동굴에서는 사람의 어금니와 어깨뼈가, 역포에서는 머리뼈가 나왔다. 이 인골들은 각각 발견된 유적의 이름을 따서 덕천에서 발견된 뼈와 어금니의 주인공은 ‘덕천 사람’이라 하고, 역포에서 발견된 뼈의 주인공은 ‘역포 아이’라고 부른다. 이들 뼈의 특정을 보면 호모 사피엔스(슬기 사람) 계통으로 볼 수 있는데 역포 아이는 열세 살 정도 된 어린 여자 아이로 판명되었다. 덕천 사람이나 역포 아이는 대략 10만 년 전에 살았던 우리 땅의 네안데르탈인이라 할 수 있다.

승리산사람, 만달사람

현대 인류와 같은 종류에 속하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뼈는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다. 덕천 사람의 뼈가 발굴된 평남 덕천 승리산 동굴 유적에서는 덕천 사람이 묻혀 있었던 곳보다 조금 위쪽의 층에서 다른 사람의 아래턱뼈가 나왔고, 평양 승호 구역의 만달리 동굴 유적에서도 역시 사람의 머리뼈와 아래턱뼈가 발굴되었다. 이들을 각각 ‘승리산 사람’과 만달 사람’이라고 하는데, 우리 땅의 크로마뇽인이라 할 수 있으며, 북한에서는 ‘신인’이라고 한다.

지금부터 5만 년 전쯤의 승리산 사람과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것으로 보이는 사람의 뼈가 평양시 상원군 용곡리 동굴과 충청북도 단양의 상시리 바위 그늘 유적에서도 발견되었다. 북한의 고고학자들은 승리산 사람과 만달 사람이 우리 민족의 직접적인 조상이라고 주장하지만, 아직 분명히 밝혀진 사실은 아니다. 왜냐하면 승리산 사람의 머리 형태와 현대 한국인의 머리 형태에서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머리를 내려다보면, 우리 겨레 중 많은 사람의 머리 형태는 좌우가 넓적하고 앞뒤 길이가 짧은 편이다. 앞뒤길이를 100이라 하면 좌우 너비는 80을 넘어서는데, 이런 머리 형태를 짧은 머리(단두 : 短頭)라고 한다. 앞뒤 길이에 대한 좌우 너비의 비율이 75보다 낮은 경우를 긴 머리(장두 : 長頭)라고 하는데, 보통 아프리카나 유럽 사람의 머리 형태가 그러하다.

또 앞뒤 길이를 100이라 할 때, 귀에서 정수리까지 재는 머리 높이가 80을 넘어서면 높은 머리(고두 : 高頭)라고 하는데, 우리 겨레는 대개 높은 머리이다. 요즘에는 서양식 음식을 많이 먹는데다, 태어나자마자 부모님이 업어 키우거나 옆으로 뉘어 키워서 머리 앞뒤 길이가 긴 사람이 많아졌다. 하지만 이것은 최근에 서양식 생활 습관이 퍼지면서 체질과 체형이 많이 달라져서 나타난 현상이고, 아직까지 우리의 머리 형태는 짧은 머리인 경우가 훨씬 많다.

그런데 승리산 사람은 바로 머리의 좌우 너비가 좁고 앞뒤 길이가 긴 형태이다. 따라서 북한 학계의 주장대로 승리산 사람이 곧바로 현대 한국인의 조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볼 수 있겠다. 그래도 승리산 사람이 우리 땅에 살았던 조상 가운데 한 사람인 것은 분명하다.

전곡리구석기유적

전곡리선사유적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이자 가장 큰 규모의 구석기시대 유적으로서 1978년에 발견되어 국가사적 제268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전곡리유적에서는 동아시아 최초로 아슐리안형(形) 주먹도끼가 발견되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1940년대 이후부터 전곡리유적 발견당시까지 정설로 믿어졌던 모비우스(H. Movius)교수의 세계구석기 2원론을 무너뜨리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한탄강이 굽이쳐 흐르는 연천의 현무암 대지 위에 자리 잡은 전곡리 유적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에서도 매우 중요한 구석기 유적이다.

전곡리유적에서 발견된 아슐리안형 석기들은 이전까지 모비우스의 학설에 따라 인도를 경계로 아시아의 동쪽 지역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믿어졌던 전기구석기시대를 대표하는 석기이다. 전곡리유적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주먹도끼들이 확인되었는데 주로 석영암과 규암을 사용하여 제작된 것들이 많고, 형태면에 있어서 유럽의 아슐리안형 석기와 달리 두께가 두껍고, 떼어내지 않은 자연면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제작 방법에 있어서도 유럽과는 달리 날을 세밀하게 다듬은 것이 많지 않고, 대신 몇 번의 강한 타격으로 날을 만든 것이 대부분이다.

구석기시대의 먹을거리

적게는 30명, 많게는 50명에 이르는 한 집단이 다 같이 먹고 살아가려면 하루 온종일 먹을 것을 찾아다니는 데 시간을 다 써야 했을 것이다. 이런 집단이 한곳에서 살다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부근에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나무 열매나 뿌리는 바닥이 나게 된다. 따라서 채집을 주로 하며 생활한 구석기 사람들은 먹을 것이 있는 곳을 찾아 끊임없이 옮겨 다녀야 했다. 초기 인류 역사가 긴 시간 동안 인류가 별다른 진보 없이 원시 채집생활을 영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이다.

한반도에 살았던 구석기 사람들은 주로 무엇을 채집해서 먹고 살았었을까? 식물은 좀처럼 화석을 남기지 않기 때문에 이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지질학자들의 도움을 얻어 당시 한반도의 자연 환경을 살펴봄으로써 그 대충을 짐작할 수 있다. 구석기 시대에 한반도에는 명아주, 쑥, 냉이, 고사리, 솔잎, 마, 칡, 도라지, 토란, 더덕, 대추, 밤, 도토리 등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주로 이러한 음식을 먹고 자랐을 것이다. 현대인들이 계절에 따라 건강식품으로 먹는 것이 구석기 사람들에게는 일상음식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시대에 큰 나무에 달린 열매를 따는 일은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땅을 파서 식물의 뿌리를 캐거나 풀잎을 따다 보면, 손에 상처가 생기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채집하거나 땅을 파는 데 편리한 도구를 개발하게 되었던 것이다. 인류의 삶이 더욱 풍족해진 것은 바로 도구를 더 편리하게 만들고, 새로운 도구를 발명한 데서 비롯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구석기시대의 사람들은 아직 그릇을 만들 줄 몰랐기 때문에, 채집해 온 것을 요리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저 단순하게 채집해 온 그대로 먹거나, 나뭇가지에 생선이나 짐승 고기를 끼워서 굽는 정도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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