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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시대의 사냥

사냥은 그 시대에도 그랬겠지만, 지금의 원시 부족에서도 사냥은 매우 가치 있는 생계 행위이다. 고기를 함께 나누어 먹으며 단백질을 얻는 행위는 생물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상당히 깊은 의미가 있다. 식물성 식량이 풍족해도 고기를 섭취하지 못하면 영양 불균형을 가져와 건강을 잃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고기만 먹어도 문제가 되므로 음식은 육류와 채소 두 식량원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짐승을 사냥해서 잡으면 고기를 먹어 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고 또 그 가죽을 벗겨 옷을 만들어 입을 수도 있고, 그 뼈로 여러 가지 도구들도 제작할 수 있어 여러모로 유용하다. 흔히 구석기 시대 사람들이 옷을 입지 않았으리라 생각하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따뜻한 기후에 살았다면 모르겠지만 추운 기후에서 실제로 추위가 닥쳤을 때 구석기 사람들은 옷을 입어 추위로부터 몸을 지키려고 했을 것이다. 당시까지 아직 사람들이 천을 짤 줄 몰랐던 사람들에게 있어 추위를 막는 데는 짐승의 가죽이 최고의 재료였을 것이다.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농사를 지을 줄 몰랐다. 보통 그들은 수십 명이 무리를 지어 다니며 식물을 채집하거나, 작은 짐승들을 잡아먹고 살았다. 구석기 시대 전체에 걸쳐서 채집 활동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을 테지만, 집단의 규모가 커질수록 사냥도 점점 더 중요해졌다. 이러한 사냥 기술이 발달해 짐승을 더욱 많이 잡게 되었기 때문에 인류는 마지막 빙하기의 혹독한 추위를 이겨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구석기 시대 유적에서는 짐승의 뼈가 많이 발견된다. 이것은 당시 사람들이 그런 짐승을 잡아먹었다는 증거이다. 유적에서 발견된 뼈들로 보면 구석기 사람들이 주로 사냥한 짐승은 쌍코뿔이, 하이에나, 늑대, 곰, 멧돼지, 노루, 사슴 등이었으며 곳에 따라서는 원숭이도 잡아먹은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사슴이나 노루와 같은 순한 초식 동물이었다.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이러한 사냥감을 찾아 옮겨 다녔다.

구석기 사람들이 단백질을 섭취하는 주된 방법은 아무래도 짐승의 잔해를 얻어먹는 것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직접 동물을 잡기도 했겠지만 구석기 사람들이 호랑이, 쌍코뿔이, 늑대, 곰, 개, 사슴 같은, 자신보다 훨씬 빠르거나 힘이 센 동물을 사냥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이 사용할 수 있는 도구는 자연 상태의 돌을 깨뜨리고 조각을 떼어 날을 세운 석기와, 동물 뼈나 나무 막대로 만든 몽둥이 정도로 열악했을 것이다. 따라서 구석기 사람들은 처음에는 주로 다른 포식 동물들이 사냥한 먹이를 가로채는 방법으로 육류를 얻었을 것이다. 지금도 아프리카나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들을 보면 이들이 야생 동물을 직접 사냥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자와 같은 포식동물이 사슴이나 말과 같은 초식 동물을 사냥해 먹다 남긴 것을 주워 먹는 경우를 확인 할 수 있다.

인류의 사냥

아프리카의 초기 인류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어쩌면 전혀 사냥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학자들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두개골에 외부의 충격을 받아 금이 가고 부러진 흔적이 있는 것을 보고, 서로를 공격한 증거라고 생각했었다. 먹을 것이 모자라 서로를 잡아먹은 증거라고 해석했던 것이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처음 발견한 남아프리카 인류학자 레이먼드 다트는 최초 단계의 인류가 이미 살인 본능을 지니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주로 맹수를 사냥해 먹었을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이후의 연구로 보면 이것은 사실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도리어 맹수의 사냥감이 되는 나약한 사냥감이었던 것이다. 아프리카의 스와트크란스란 곳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두개골 화석이 무더기로 발견된 적이 있다. 화석이 발견된 구덩이 옆에는 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다. 이 유적을 발견한 학자는 두개골 화석을 조사하다가 같이 발견된 맹수의 위턱뼈에 달린 두 이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두개골에 난 구명의 크기가 딱 들어맞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옆의 나무를 살펴본 그는 깨닫게 되었다. 두개골 뼈가 무더기로 발견된 곳은 바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맹수에게 잡혀 나무 위에서 먹힌 뒤에 뼈가 땅에 떨어져 생긴 공동 무덤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걸핏하면 맹수에게 잡아먹히는 생각보다 매우 유약한 동물이었다.

따라서 구석기 유적에서 발견된 동물 뼈에 인간이 석기를 시용하여 도살하거나 살을 떼어 낸 흔적이 있다 하더라도 꼭 그 짐승이 인간의 손에 사냥되었으리라 장담 할 수는 없다. 하이에나와 같은 다른 맹수가 남긴 고기를 주워 먹는 것이야말로 구석기 사람에게는 지능적으로 단백질을 얻는 수단이었다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주워 먹기만 한 건 아니다. 때로는 오랜 기간 동안 다른 맹수가 남긴 고기를 찾아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고, 또 집단의 수가 늘어나 빼앗은 고기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때문에 직접 곰, 큰쌍코뿔이, 털코끼리 같은 커다란 동물을 직접 목숨을 걸고 사냥해야 할 경우도 생겼을 것이다.

사냥은 혼자서 하기 매우 어렵다. 크고 강한 짐승일수록 위험은 배가 된다.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구석기 사람들은 사냥을 할 때 협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큰 짐승은 사람이 혼자서 상대하기 힘들고 아무리 작은 짐승이라도 사람보다는 빠르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함께 잡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사냥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일을 나눌 필요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육식 짐승이 나타나지 않나 망을 봐야 했을 것이며, 큰 짐승을 잡으면 집단까지 나를때 여럿이 같이 짊어져야 했을 것이다.

포식 동물들도 그렇지만 사냥에 나간다고 해서 100% 성공을 장담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 당시의 빈약한 신체적 조건과 열악한 도구들을 생각한다면, 지금보다 몇 배 더 힘들었을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사냥을 한 번 하더라도 제대로 하기 위해 다양한 지혜를 모아 계획을 세우게 되었을 것이다. 사냥꾼들은 대나무 창, 나무 창, 주먹도끼, 사냥돌 같은 무기를 손에 쥐고 짐승 무리의 주변에서 사냥감을 물색했을 것이다. 그러다 무리 중에 약한 놈 혹은 새끼들을 대상으로 선정하고 짐승 무리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시기에 함께 돌진한다. 사냥돌을 던지고 함성을 지르며 미리 목표로 한 약한 짐승을 덮치게 된다. 이러한 모습은 지금의 원시 부족 뿐 아니라, 사자와 표범 등 육식동물들의 사냥 모습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불의 발견과 사용

사냥을 하고 나서, 불을 사용할 줄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 식생활은 크게 달라진다. 다른 맹수처럼 불을 시용할 줄 몰랐다면 동물의 고기를 날것으로 먹었을 것이다. 인류는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지거나 화산이 폭발할 때, 불이라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이 불을 인간은 자신들의 생활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들을 알게 되고, 나뭇가지를 비비거나 부싯돌을 부딪쳐 불을 일으키는 방법도 터득하게 된다. 불을 피우니 밤에 잘 때도 춥지 않고 맹수들의 공격에서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게 된다. 또한 고기를 불에 구워 익혀 먹으니 맛있고 부드러워 씹기도 좋고 소화도 잘 되게 되었다. 불을 이용할 줄 알게 되자, 사람들은 불씨를 소중히 여겨 꺼지지 않도록 보존하는데도 신경을 많이 썼을 것이다.

초기의 인류는 불을 사용할 줄 몰라 고기든 채소든 모두 날것으로 먹었을 것이다. 날것으로만 먹으려면 우선 먹을 수 있는 음식의 범위가 한정된다. 게다가 육류에 있는 기생충이나 병균이 그대로 사람의 몸으로 들어와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 따라서 당시의 인류의 수명도 현재 보다 짧아서 대략 서른 살을 넘기지 못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간이 불을 사용한 흔적 중 가장 오래 된 것은 아프리카 땅에서 발견되었다. 케냐의 바링고 호수 주변에서 불에 탄 재가 발견 되었는데 그 연대는 140만 년 전까지 올라간다. 아시아에서는 중국 윈난성(雲南省:운남성)에서 인간의 이(치아)와 함께 재가 발견되었다. 그러나 불을 사용한 가장 확실한 증거는 베이징 저우커우덴(주구점) 동굴에서 확인되었다. 이 동굴에서는 재가 상당히 두꺼운 층을 이루었고, 짐승 뼈와 석기도 함께 발견되었다. 따라서 이곳에서 발견된 고인류인 베이징 원인은 불을 피워 고기를 익혀 먹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베이징 원인은 대략 70만~20만 년 전에 살았던 인류로, 지금까지 발견된 바로는 가장 오래 전에 불을 사용한 사람들이다. 한반도에서는 상원 검은모루 동굴의 사람들이 베이징 원인과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불은 처음에는 추위를 막는데 주로 쓰였지만 음식을 조리하는데 쓰이면서 인간 생활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열매나 잎과 달리 나무와 풀의 줄기는 날것으로는 질겨서 먹지 못했는데 익혀 먹을 수 있게 되었었고, 앞서 말한 것처럼 고기도 익히면 훨씬 부드러워 진다. 인류는 진화하면서 치아가 점점 약해졌는데, 불로 음식을 조리하면서 예전처럼 질긴 음식을 오래 씹을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불로 음식을 조리하면서부터 수명은 거의 두 배 가까이 늘어나게 되었다.

구석기 사람들도 옷을 입었다?

인간은 언제부터 옷을 입기 시작했을까? 그리고 왜 옷으로 살갗을 가려야만 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을 알지는 못한다. 세계 어디에서도 구석기 사람의 옷 유물이 출토된 적이 없다. 하지만 구석기시대 사람들도 추운 겨울을 옷 없이는 지낼 수 없었을 것이다. 1차적으로 옷은 몸 가운데 약하면서 중요한 부분을 가리거나 추위를 막을 필요에서 생겨났을 것은 분명하다. 인류가 맨 처음 입은 옷은 아마 짐승 가죽과 나무 잎사귀로 만들었으리라 생각된다. 무엇보다도 사냥해서 잡은 동물 가죽이 주재료였을 것이다. 곰 가죽과 같이 바깥쪽이 털로 뒤덮여 있는 것은 추위를 막는 방한용으로 좋았을 것이다. 구석기 유적에서 사슴 뼈가 많이 발굴되는 것으로 보아 분명히 사슴 가죽도 많이 사용했을 것이다.

인류가 처음 등장한 곳은 아프리카 대륙이라고 보고있다. 그곳은 날씨가 따뜻하니 인류는 옷으로 몸을 가릴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아프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옷 없이 맨몸으로 살아가는 원주민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다 인류가 점점 퍼져 나가 추운 지방까지 진출하면서 옷을 입기 시작했다고 지금까지는 생각해 왔다. 하지만 인류가 왜 굳이 추운 지방으로 갔는지 이유가 분명하지 않다. 여기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현재 추운 지방의 기후가 당시에는 따뜻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주된 이유는 채집할 수 있는 식량이나, 먹잇감을 쫓아 사냥 대상이 되는 동물의 이동을 따라 추운 곳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 특별한 이유도 없이 사냥감이나 채집할 공간을 찾으면서 습관적으로 옮겨 다닌 집단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 집단이 생활하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 주변에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이동의 시기와 방향이 정해졌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만약 한 집단이 추운 지방으로 가야만 하는 어떤 이유가 이었다면, 옷이라는 것을 입고 갔을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

앞서 말했듯이 인류는 수백만 년 동안 매우 힘없고 보잘것없는 존재였다. 초기 인류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화석을 연구한 결과를 보면 평균 수명이 11~12세 밖에 안 되었다고 한다. 지금 개나 소와 비슷한 수명이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성은 평균 8~9세에 첫 아이를 낳고 보통 3~4년 뒤에 둘째를 낳았다고 한다. 어떤 어미가 8세 때 아이 하나를 낳았다고 가정하고, 3년 뒤에 또 한명을 낳고 12세에 죽었다면, 어미가 죽을 때 첫째 아이는 4세정도, 둘째는 젖먹이일 것이다. 아이들이 다 자라기까지 친부모가 살아있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이러한 환경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도 다른 포유동물처럼 새끼가 다 클 때까지 기르는 일을 오로지 친부모만이 책임져야 했다면,혼자 살아갈 능력이 없는 고아들은 성년이 되기 전에 거의 죽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존재하는 것은 그 옛날 같이 어울려 사는 집단 공동체 전체가 아이를 다 같이 돌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곧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 친부모만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책임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아마 공동체의 여성들은 자기 자식과 함께 남의 아이들까지 다 같이 돌보고,그 사이에 남성들은 먹을 것을 구해 왔을 것이다. 곧 성별에 따라 할 일을 나누어 함으로써 서로 도왔던 것이다. 또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유적을 보면 공간을 잘 구분해 이용했음을 알 수 있다. 짐승 뼈나 조개껍데기 같은 음식물 쓰레기, 도구를 만드는 재료와 만들고 남은 쓰레기를 두는 장소를 적절히 나누어 배치했다. 거의 원숭이에 가까웠던 시절부터 일을 같이 나누어 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언어는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을까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의 종류에는 기호를 통해 표시하는 언어와 상징을 통한 언어가 있다. 기호 언어란,예를 들어 교통 신호와 같이 특정한 부호에 특정한 뜻을 부여해 그것들을 나열함으로써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건널목에서 신호등에 초록색 불이 들어오면 길을 건너는 것은, 초록색 불이 길을 건너라는 기호 언어임을 배워서 알기 때문인 것이다.

상징 언어란 사람의 말과 같이 목소리나 글자의 조합에 계속 상징적 의미를 부여해 조합의 범위와 뜻을 무한대로 확대할 수 있는 언어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뭔가 먹을 것을 담는 도구를 ‘그릇’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물을 담는 그릇은 물잔, 술을 담는 그릇은 술잔, 밥을 담는 그릇은 밥공기라고 한다. 곧 새로운 사물이 생길 때마다 이미 있는 소리와 글자를 가지고 조합해서 새로운 말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상징 언어인 것이다. 이러한 상징 언어가 언제 생겨났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나마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도구, 그리고 인간 사회의 발달과 궤적을 같이하고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언어는 음성을 재료로 사용하는 의사 전달도구이기 때문이다.

상징 언어, 곧 말은 언제 생겨났을까? 구석기 사람들은 처음부터 공동생활을 했다. 그렇게 협동해서 생활하려면 서로 자기 뜻을 전달하고, 남이 뜻하는 바를 알아들을 필요가 있다. 따라서 손짓, 발짓을 하거나 무슨 소리를 질러서 의사소통을 했을 것이다. 문제는 오늘날 우리가 쓰는 상징 언어, 곧 말이 언제 등장했는가 하는 점이다.

사람이 쓰는 말의 기원을 알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입으로 하는 말이란 눈에 보이는 흔적을 전혀 남기지 않아, 우리는 역시 상상 속의 추리를 통해서 그 발명의 순간을 가늠해 볼 수 있을 뿐이다. 말을 하는 것은 정신 능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언어는 뇌의 작용이기 때문에 언어를 사용하게 되면서 인류의 뇌가 두개골에서 차지하는 용적도 급격히 커졌을 것이다. 어떤 학자들은 약 160만 년 전에 등장한 호모 에렉투스가 매우 수준 높은 집단 사냥 기술을 지녔으며, 그들의 두개골 화석에서 뇌의 형태와 기능을 짐작해 볼 때 말을 할 줄 알았으리라고 본다. 반면에 100만 년도 넘는 긴 시간 동안 별다른 진보 없이 똑같은 도구만 만들어 쓴 점을 보아 호모 에렉투스는 지식을 배우고 전달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이 없었고, 그렇다면 상징 언어를 구사 할 줄 몰랐으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우리 현생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는 여러 가지 다양한 석기를 아주 많이 만들어 냈다. 곧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도구를 머릿속에서 그려내고,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내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색하는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지금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이해하는 단계를 넘어서서, 눈에 보이는 것을 조합하고 해체해서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창조와 예술의 시초이다. 예술이란 어떤 구체적인 문화의 맥락 속에서만 그 의미가 전달되고 이해될 수 있는 상징 행위로서, 고도로 발달한 두뇌의 사유 능력이 있어야 가능한일이다. 게다가 이때부터 사람들은 죽음 뒤의 세계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 때 사람들이 죽은 사람을 그냥 골짜기 깊숙한 곳에 던져두지 않고, 무덤을 만들고 죽은 사람을 위해 꽃을 바친 흔적까지 발견되었다. 볼 수 없는 세계를 생각하고 감정을 표출하는 능력을 갖추었던 만큼 구석기 시대 후기 단계를 살았던 호모 사피엔스는 당연히 상징 언어를 사용할 줄 알았을 것이다.

초기 인류들은 언어라는 것이 없이, 몸짓 등과 지금 원숭이나 침팬지의 목소리와 다름없는 외침 등으로 의사를 나타냈을 것으로 생각된다. 언어를 말하기 전에 인간의 목소리는 그저 동물의 외침 소리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인간은 이제 몸짓으로 표현하던 수많은 사물을 목구멍에서 나오는 소리만으로 각기 구별해서 표현하려 했을 것이다. 생활 경험이 많이 쌓일수록 표현해야 할 종류는 몇 곱씩 늘어났다. 이런 상황이 생기게 되면서 구석기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생각을 많이 하게 되고, 이 필요를 위해 뇌의 저장 용량을 늘리는 방향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언어 능력은 대뇌 작용에 따르게 되고, 인간의 뇌는 앞부분과 옆 부분이 주로 발달하는데,대뇌의 옆 부분 한쪽이 언어를 담당하고 다른 한쪽은 지각과 운동을 담당한다고 한다. 따라서 언어가 필요해지자 그 쪽 면의 뇌가 발달하고, 그러면서 인간의 언어 능력이 차츰 발달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유인원인 침팬지의 뇌용적은 500cc이고,언어를 사용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네안데르탈인의 뇌 용적은 1500cc이다. 언어를 사용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뇌의 부분이 필요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일단 언어 체계를 발명하자,인간의 손재주도 그 수준이 훌쩍 높아지기 시작했다. 기술이 좋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또 여럿이 말로 의논하면서 더 좋은 도구를 만들게 되었을 것이다. 신석기 시대의 정교한 석기들은 언어의 도움 없이는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도구를 가지고 몰이 사냥을 하거나 식량을 나누고 사회 조직을 만들면서 의사소통이 더욱 필요해져 언어는 점점 더 발전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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