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곡서가 : 당신의 뇌는 어디에서 왔는가? <지능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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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2025.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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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 스토리텔러
김상태(국립나주박물관장)
구석기시대 도구사가 전공이다 보니, 그 배경이 되는 진화인류학이나 뇌과학 등의 관련 분야의 연구 성과에도 늘 귀를 기울이는 편입니다. 얼마 전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원제:Icognito, 데이비드 이글먼 지음, 김승욱 옮김)를 읽으며 여러 번 고개를 끄덕였었는데, 최근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가 아니라, 연신 헤드뱅잉(?)을 하며 읽은 책이 있어 소개하고자 합니다.
<지능의 기원> (원제:A Brief History of Intelligency, 맥스 베넷 지음, 김성훈 옮김)입니다. 이 책은 이미 지구촌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있으며, 인상 깊게 읽은 독자들의 리뷰가 온라인상에서 다수 확인됩니다. 다만 도구사를 공부하는 나에게 이 책은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는 다소 다른 관점으로 읽혔습니다. 여기에 책의 내용을 길게 요약하는 것은 일종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짧은 인용과 함께 읽은 느낌을 자유롭게 풀어놓아 보겠습니다. 참고로 책의 내용을 옮긴 부분은 “쌍따옴표”를 사용하겠습니다.
책은 1962년 미국 ABC에서 방영된 <우주 가족 젯슨>을 리뷰하며 시작합니다. SF장르에 속하는 이 만화에는 지능을 갖춘 로봇 ‘로지Rosey’가 등장합니다. 로지는 로봇이지만 가족의 구성원으로 함께 생활하며 감정도 느끼는 마치 사람 같은 존재입니다. 저자는 로지의 등장을 보며 “인공지능이 급속히 발달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현재까지도 로지와 같은 수준의 인공지능 개발은 언감생심임”을 아쉬워합니다. 그래서 사람 수준의 로봇을 만들기 위해 “가장 단순한 원시 지능부터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 책이 지능의 역사 전체를 연대기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그의 그러한 생각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 책의 뼈대이자, 그가 제시한 지능 발달의 키워드는 ‘조종-강화-시뮬레이션-정신화-언어’의 순서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5억 5천만 년 전, 뇌는 “다수의 신경세포가 그물처럼 얽힌 신경망의 형태로 출발”합니다. 최초의 원시적 뇌로 인정할 수 있는 이 신경망은 “선충과 같은 초기 좌우대칭동물들이 먹이를 찾거나 위험으로부터 피하는 데 필요한 움직임, 즉 근육을 ‘조종’하는 데에 기여”했습니다. 이것이 뇌의 첫 번째 혁신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지구 최초로 광합성을 시작한 남세균에게는 뇌가 필요치 않았다는 것입니다. 뇌는 다른 생명체를 먹어서 에너지를 얻는 ‘섭식영양’ 생명체들에게서만 진화되었다는 점입니다. 통상 뇌는 ‘신체의 움직임을 통제’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하지만, 기원적 관점에서 볼 때 다른 개체를 잡아먹기 위해, 즉 사냥을 위해 뇌가 자연선택 되었다고 보는 편이 좀 더 본질적인 이해일 것 같습니다. 주로 사냥을 통해 꾸준히 성장해 온 인간의 뇌가 이토록 커진 것 역시 그것으로 분명하게 설명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류와 같은 척추동물이 출현하면서 뇌는 두 번째 혁신”을 이룹니다. 인간 뇌의 기본 구조가 이때 형성되었고, 시행착오에 의한 강화학습이 가능해지는 단계라고 합니다. 이 단계에서는 “외부 세계를 3차원으로 인식할 수 있고, 뇌 속에 공간 지도를 구축함으로써 공간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뇌의 세 번째 혁신은 포유류의 출현과 함께” 이루어집니다. 이 단계에서는 특히 “전두엽의 신피질이 발달한 덕분에 행동하기에 앞서 시뮬레이션으로 가상학습”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일화기억을 바탕으로 한 “시뮬레이션 학습은 포유류가 천적으로부터 살아남는 데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 단계에 이른 뇌는 수면 중에 일화기억을 처리하기 위한 꿈을 꿀 수 있으며, 인류의 도구 발달과 관련된 계획 수립, 작업기억 능력 등도 이때부터 발달하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저자는 현재의 인공지능 개발은 대체로 이 단계까지 와있으며, 일부는 이보다 좀 더 진화하고 있는 상태라고 합니다.
뇌의 “네 번째 혁신은 영장류의 시대”에 이루어집니다. 집단을 이루고 사는 영장류 중 일부 종만 뇌가 급속히 커진 것<그림 1>을 일찍이 로빈 던바는 ‘사회적 뇌 가설’로 설명한 바 있습니다. 더 큰 집단을 이루기 위해서 더 큰 뇌가 필요했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집단의 규모가 아니라 집단의 성격이 본질”임을 주장합니다. 즉 “초기 영장류 사회는 암수가 혼재된 15∼50마리로 구성된 불평등 계급 집단이었는데, 거기에서 살아남으려면 상대방의 의도를 효과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큰 뇌가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원숭이 새끼들은 집단 내에서 모계의 지위를 세습하지만, 낮은 지위의 개체라도 높은 지위의 개체와 관계를 트면 생존에 훨씬 유리해진다”고 합니다. 이때 더 큰 뇌를 가진 개체일수록 관계 맺기에 유리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포함한 영장류의 뇌 크기 차이(Patrick Friedrich et al, 2021에서 편집)
이 단계에서는 의도 파악 외에 “모방학습과 미래 예측 능력 등도 가능해지는 정신화 단계에 접어든다”고 합니다. 여기서 저는 뇌 기능의 진화 이야기보다 원숭이 집단이 불평등하다는 것에 더 시선이 갔습니다. 우리는 막연히 구석기시대가 평등한 사회였다고 짐작하고 있지만, 유인원 집단이 불평등하다면 초기 인간 집단 역시 불평등한 사회였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 추론 아닐까요? 이와 관련하여, 다수가 매장된 구석기시대 무덤 유적 러시아 숭기르에는 소수의 몇몇 무덤에서만 화려한 장신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는 심지어 무성의하게 매장된 무덤들도 섞여 있습니다. 숭기르의 사례를 들어 구석기 사회가 평등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인류가 생산 경제에 돌입한 이후 잉여가 발생함으로써 불평등이 시작되었다는 주장이 대세입니다만, 앞으로 좀 더 살펴볼 일입니다.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호모Homo의 등장과 함께 마지막 다섯 번째의 혁신”이 나타납니다. 저자는 그것을 ‘언어’라고 합니다. 특히 “선언적 명칭과 문법이 포함된 언어는 인간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고, 그와 비슷한 시기에 뇌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언어는 뇌의 브로카 영역과 베르니케 영역의 통제를 받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전 단계의 뇌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새로운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다만 “언어는 ‘집단선택’이란 매커니즘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앞서 살펴본 네 가지 혁신과는 다르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떠 올랐습니다. 언어는 문화적 속성에 가깝고, 그래서 다양한 집단이 저마다 다른 언어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언어는 후천적으로 습득하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저자도 지적했듯 언어는 유전적으로 물려받는 자연선택의 결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상징성을 갖춘 언어를 과연 생물학적 진화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느냐는 의문입니다. 다섯 번째의 혁신을 설명하는 저자의 논지는 앞선 단계의 혁신을 설명하는 논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모호하고 빈약해진 느낌을 받습니다. 이것은 저자의 역량이 부족해서라기보다 최신 뇌과학조차도 우리의 뇌를 분명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사정과 무관치 않을 것입니다.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여섯 번째의 혁신을 예측하고 있습니다. “미래에는 ‘인공초지능’의 개발로 인간이 생물학적 한계를 벗어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지당한 예측입니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도구를 통해 스스로의 생물학적 한계를 하나둘씩 극복해 온 존재들이니까요. 인공지능 역시 우리의 도구일 뿐입니다. 저자의 예측은 도구 발달의 큰 경향성과 잘 합치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다만 인공지능이 극복해 줄 생물학적 한계란 것이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의 뇌라는 점에서 흥분과 우려를 동시에 갖게 됩니다. 그것이 기존의 많은 도구들처럼 우리에게 수혜일지, 혹은 전과는 달리 재앙의 시작일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예측컨대 이미 인간 신체는 조금씩 기계로 대체되고 있고, 장차 뇌까지 인공지능으로 대체할 수 있게 된다면 ‘호모Homo’라는 학명을 가진 기계 인류가 탄생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미 장기 이식이나 유전자가위 등의 개발로 도구 발달이 진화를 초월한 지는 한참 되었습니다. 관건은 여기에 인공초지능과 같은 도구까지 결합한다면, 과연 멸종과 같은 자연의 섭리까지도 거스를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섣부른 예단이지만, 아주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고 생각됩니다.
저자는 AI 관련 기업가이면서 뇌과학자이기도 합니다. 이 책에 실린 지식들은 그가 AI 개발과 관련하여 습득한 것들이겠지만, 연구와 개발에 여념이 없음에도 대중 눈높이에 맞추어 책으로 펼쳐낸 것은 남다른 성실함과 통찰 없이는 불가능하였을 것입니다. 읽는 내내 헤드뱅잉으로 목은 아팠지만, 많은 생각과 깨달음을 준 저자에게 감사의 마음을 보냅니다.
소개 도서 :
맥스 베넷 Max Bennett, 김성훈 옮김, <지능의 기원 A Brief History of Intelligence>, 길벗출판,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