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질학자가 들려주는 진지하지만 재미난 고고지질학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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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2024.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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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철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제4기환경연구센터 책임연구원 )
고고학은 지질학과 마찬가지로 과거를 다루는 학문입니다. 다만 지질학의 주제는 자연과학적 현상이지만, 고고학은 과거 인류 활동으로 크게 나눌 수 있습니다. 과거 인류는 자연에 적응하고 생명력을 이어갔기 때문에 자연환경과 과거 인류는 매우 밀접한 상관성을 갖습니다. 이러한 상관관계를 바탕으로 지질학과 고고학을 결합한 학문 분야를 고고지질학(Geoarchaeology)이라고 합니다. 필자는 46억 년의 지질 역사에서 인류가 탄생한 가장 최근의 신생대 제4기(Quaternary: 약 250만 년부터 현재까지)를 전공한 지질학자로 박사과정 때부터 고고학과의 인연을 이어왔습니다. 2020년에는 호주 울런공(Wollongong) 대학에 방문 연구원으로 초빙되어 고고학 분야에서 뛰어난 연구 성과를 내는 연구팀과 함께 일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연구실이 속한 단과 대학은 지구대기생명과학부(School of Earth, Atmospheric and Life Sciences(SEALS))입니다. 이는 우리나라 대학으로 따지면 고고학과가 자연과학 단과대학에 소속된 셈입니다. 당시 연구실 책임자인 리처드 로버츠(Richard Roberts) 교수에서 물어보니 오히려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의아해하며 “고고학은 과학입니다(Archaeology is a science)”라고 답변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다시 말하면 고고학은 인문 사회학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자연과학에도 포함된다는 뜻입니다.
육하원칙은 누가(who), 언제(when), 어디서(where), 무엇을(what), 왜(why), 어떻게(how) 하자는 여섯 가지 기본 조건을 말합니다. 이러한 순서대로 현상이나 사물을 관찰하고 육하원칙을 사용하여 설명하면, 그 설명은 논리적 타당성을 갖게 됩니다. 고고학 연구에서도 이러한 육하원칙은 복잡한 현상을 논리 정연하게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중 언제에 해당하는 시간이라는 개념은 밤과 낮이 반복되는 현상에서 만들어진 수명을 갖는 인간에게 가장 실재적이고 중요한 개념입니다. 과거의 시간을 이해하는 것은 여섯 가지 원칙에 대한 해답을 찾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필수 요소입니다. 하지만 고고학에서 언제는 항상 매우 민감하고 어려운 연구 주제입니다. 고고 유물들이 과거 언제를 뚜렷이 지시하는 경우는 다행이지만 매우 드문 경우이고 대부분은 언제에 대한 시점이 불분명합니다. 따라서 이에 대한 고고지질학적 접근이 중요시되는 이유입니다.
고고지질학적 연구는 유물이 출토된 층위의 퇴적층을 대상으로 퇴적층의 형성 시기를 포함한 다양한 지질학적 분석을 통하여 유물의 형성 시기 및 당시의 자연환경을 간접적으로 추정하는 방식입니다. 유물의 형성 시기 추정은 유물이 포함된 퇴적층(유물 층 준)의 퇴적 시점이 유물이 제작된 시점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합니다. 이를 위하여 탄소연대측정(14C)과 광여기루미네선스(OSL) 연대 측정법 등의 자연과학적 분석법이 활용됩니다. 이 두 가지 연대측정법은 고고지질학에 매우 활발히 적용되는 절대연대 측정법입니다. 먼저, 광여기루미네선스 연대측정법은 퇴적된 시점을 직접적으로 측정하는 분석법으로 측정된 연대 결과는 유물의 형성 시점이 퇴적 시점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전제 조건을 만족할 경우 유물 형성 시기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물을 포함한 퇴적물이 재이동되어 퇴적된 경우는 형성 시기 추정에 필요한 전제 조건이 충족되지 못하며 그 결과는 고고지질학적 적용에 신뢰도를 낮춥니다. 한편, 탄소연대측정법은 유기 생명체가 생명 활동을 중단하여 대기와의 탄소 순환을 멈춘 시점을 측정하는 연대측정법입니다. 따라서 퇴적 시점이 유물의 형성 시점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첫 번째 전제 조건에 더불어 유기 생명체의 죽은 시점이 퇴적물의 퇴적 시점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또 다른 전제 조건이 필수적으로 충족되어야 탄소연대측정법을 활용한 유적의 형성 시기 추정이 가능합니다. 과학적으로는 가정에 기반한 전제 조건의 수가 적을수록 신뢰할 수 있는 해상도 높은 결과 도출에 유리합니다. 만약 탄소연대측정법이 목재 유물이나 뼈 등의 유기 생명체 유물에 바로 적용된다면 위의 두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 없고 가장 해상도 높고 신뢰할 수 있는 결과를 제시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반면에 두 가지 전제 조건의 불확실성이 높을 경우 연대 결과의 고고지질학적 적용은 그 신뢰도를 낮게 만듭니다.
위에서 설명한 연대측정법들의 단점들을 보완하기 위하여 최근에는 다양한 연대측정법을 교차 적용하여 단점들을 상호 보완하고 최종적으로 신뢰도 높은 결과를 도출하는 다중연대측정 방식이 일반화되고 있습니다. 이는 유물층 준을 포함하는 퇴적 단면에서 여러 가지의 연대측정법들을 적용하여 각각의 연대측정법들이 가지고 있는 장단점들을 서로 보완하고 극대화하여 최상의 신뢰도를 갖는 결괏값을 도출하는 방식입니다. 예로 각각의 연대측정법들은 연대측정의 상한(upper limit)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유물층 준의 형성 시기를 측정하기 위한 연대측정 방법이 적절하게 선정되어야 하며 퇴적층의 형성 시기가 유물의 매몰 시점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유물의 매몰 시점을 직접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들을 선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광여기루미네선스 연대측정 상한은 석영이나 장석을 이용할 경우 약 10~30만년 사이로 시료마다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일반화하긴 어렵습니다. 대체적으로는 석영이 장석에 비하여 연대측정 상한이 낮습니다. 연천군 전곡리 고고유적을 대상으로 석영을 이용한 광여기루미네선스 연대측정의 상한을 높이기 위하여 열이동 루미네선스(Thermally transferred luminescence)라는 방법이 활용된 적이 있습니다. 그 결과, 유물층준을 포함한 퇴적층의 연대를 약 20만년 전후로 제안한 적이 있습니다(Kim et al., 2010). 이러한 결과는 기존에 발표되었던 전곡리를 대상으로 한 절대연대결과들보다 오래된 결과 값에 속하는데 분석 기술 개발과 더불어 연대 상한을 높이려는 여러 시도들로부터 얻어진 새로운 결과라고 생각됩니다. 현재에도 다양한 분석 기법들이 시도되고 있으며 앞으로 기존의 분석 한계치를 넘는 새로운 결과들이 발표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앞서 설명한 탄소연대측정법이나 광여기루미네선스 연대측정법들은 우주선 기원(Be10) 핵종 매몰 연대측정법이나 고지자기(paleomagnetic dating) 연대측정법 및 Ar40-Ar39 연대측정법 등을 활용하여 그 단점들을 상호 보완합니다.
고고 발굴 기관에서 의뢰하는 여러 자연과학적 분석들은 종종 의뢰 기관의 의도에 영향을 받기도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발굴 조사 시작부터 발굴 기관과 분석기관은 고객과 업체 관계처럼 의뢰 기관의 요구를 반영하여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 국립문화유산연구원 보존과학연구실에 방사성탄소 및 OSL 연대측정 장비가 도입되어 운영 중입니다. 필자도 몇 번 실험실을 방문할 기회가 있어서 실험실 관련한 자세한 설명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실험실은 장비나 인력, 그리고 시설 면에서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발굴 기관과 분석 담당 기관이 한 기관 내에 있어서 발굴과 분석이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자체적으로 발굴 시작부터 자연과학적 해석까지 직접 담당할 수 있기 때문에 고고학 발굴에 신뢰도 높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연대측정 장비와 실험실을 직접 운영하며 고고지질학적 연구도 수행하는 필자의 관점에서 매우 환영할 만한 소식입니다. 자연과학적 해석에 기반한 합리적 추론으로 고고학의 아주 오래된 이야기를 설명하는 것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고고학적 발굴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추세에 따라 국내에서도 고고학은 더 이상 학파 간의 사상적 논쟁이 아닌 자연과학에 기반한 과학적 논쟁의 장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향후 국제적으로 유의미하고 신뢰할 수 있는 연구 결과들이 많이 발표되길 바라며, 그러한 기대로 이 짧은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 참고문헌 Kim, J.C., Duller, G.A.T., Roberts, H.M., Wintle, A.G., Lee, Y.I., Yi, S.B., 2010. Re-evaluation of the chronology of the palaeolithic site at Jeongokri, Korea, using OSL and TT-OSL signals from quartz, Quaternary Geochronology, 5, 365-3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