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기시대 유적의 야외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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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2024.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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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용식 (화서문화유산연구원)
구석기시대 유적은 처음으로 문헌조사와 현장답사를 병행한 지표조사를 통해 알려지게 된다. 지표조사를 할 때에는 집을 짓거나 밭을 일구거나 길을 내는 등의 활동으로 인해 흙이 깎여 나간 곳에서 고토양이 드러나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또한, 우리나라 야외 유적은 대체로 강이나 큰 하천변과 얕은 구릉, 평지가 만나는 지점에서 발견되기 때문에, 지형·지리적 조건도 고려해야 한다. 참고로, 비 온 뒤에는 비를 맞은 흙이 눌려 약간 낮아지지만, 일정 면적의 유물이나 돌은 흙이나 먼지가 씻겨 나가면서 그대로 남게 되며, 낮은 토양 기둥 위에 유물이 얹혀 있게 된다. 이 경우 유물이 더 쉽게 눈에 띈다. 또한, 겨울 동안 얼었던 땅이 녹는 봄에도 지표면의 흙이 동결과 해빙을 반복하면서 땅이 꺼지는 듯한 느낌을 주며, 흙도 잘게 부서져 유물이 더 잘 드러난다.
지표조사에서 유물산포지 내에서 유물이 묻혀 있는 범위를 파악하기 위한 시굴조사 전에는 20×20m, 또는 10×10m 크기의 바둑판 모양으로 그리드를 설치한다. 본격적인 시굴조사는 보통 그리드마다 하나의 구덩이를 파면서 진행되지만, 그 전에 한 번 더 지표면을 유심히 관찰하여 유물이 많이 눈에 띄는 곳을 찾아 우선조사하는 것이 좋다. 땅 속의 유물은 경작행위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지표면으로 돌출되기 때문에 유물이 많이 있는 곳은 그만큼 지표면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유적 내에서 유물이 집중된 곳을 찾아 조사하고, 그 범위를 점차 넓혀 갈 수 있다.
구석기시대 유물이 발견되는 토양쐐기 구조가 있는 퇴적층은 12m 두께로 여러 번 나타날 수 있다. 지표 아래 첫 번째 토양쐐기 구조 위에는 2030cm 두께의 밝은 갈색층이 있는데, 이 층 내부 토양이 그 아래 토양쐐기 구조를 채우고 있다. 이 층에서 1~2만 년 전의 유물이 발견되므로 토양쐐기 포함층 외에도 이 층에 대해서도 인지해야 한다. 또한, 얕은 구릉의 정상부와 상부에서는 토양쐐기가 없다 하더라도, 이 지형에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토양이 퇴적되기보다는 깎이고 이동하기 때문에, 기반암 풍화토층 위에 위치한 퇴적층에서도 구석기시대 유물이 발견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구석기시대 유적에서는 집터와 같은 유형의 유구가 확인되는 일이 극히 드물기 때문에, 유물의 시간 차이를 나타내는 유물이 포함된 퇴적층의 구분이 매우 중요하다. 비교적 좁은 지역에서도 유물이 포함된 퇴적층들이 수평적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일정 간격으로 그 흐름을 파악하고 퇴적층과 유물의 선후 관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 또한, 구석기시대 유물은 오랜 기간 땅 속에 묻혀 있기 때문에, 빗물이나 지하수, 땅 속 동물의 활동 등 여러 요인에 의해 위치가 바뀔 수 있다는 점도 인지해야 한다. 또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중력이나 비바람에 의해 유물이 이동되어 평지에 재퇴적되고, 경우에 따라 크기나 무게에 따라 분급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자주 발견되므로, 이들을 같은 시간대의 유물로 쉽게 간주해서는 안 된다.
본격적인 발굴조사에 앞서, 우선 유적의 전체적인 퇴적층을 파악하기 위해 조사지역의 중앙에 구덩이를 판다. 지표에서 기반암까지 파서 이 구덩이로 유적에서의 전체적인 퇴적층 양상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한다. 이 기준 토층 구덩이에서 유물이 분포하는 문화층과 조사지역의 퇴적층 양상을 확인한다. 이후 표토층과 유물이 없는 층은 굴삭기를 이용해 제거하고, 유물이 포함된 퇴적층은 몇 cm 두께로 반복적으로 토양을 제거하면서 유물을 찾는다. 유물이 드러나면 물로 유물에 묻은 흙을 씻어 주고, 크기를 알 수 있는 자와 방향판 등을 놓고 사진을 찍으며, 유물이 군집을 이루는 모습도 함께 촬영한다. 가능한 다양한 사진을 찍어 출토 당시의 모습을 기록한다. 출토된 유물의 위치는 GPS 등의 장비를 활용하여 기준점에서부터 유물의 동서, 남북 방향까지의 거리와 해발고도를 측정한다. 이 기록을 바탕으로 유물의 암질, 종류별 특징, 유물군의 성격, 수직 및 수평적 분포의 특징 등을 살필 수 있다. 그리고 출토 위치와 일련번호를 부여하여 1점씩 수습하여 보관한다. 같은 층위나 시기의 유물도 수십 cm 높이를 달리하며 출토되는 경우가 많아, 유물을 수습한 후에는 다시금 토양을 제거하면서 유물을 찾는 작업을 계속한다. 또한, 유물이 분포하는 퇴적층이 2개, 3개인 경우도 있어 층별로 발굴조사를 반복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이러한 양상은 앞서 조사한 기준 토층에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진행된다.
우리나라 구석기유적 발굴조사에서 주로 출토되는 석기는 주먹도끼와 찍개처럼 구석기시대 전기부터 후기까지 사용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출토된 유물의 조합과 형식 분류만으로 그 시기를 확정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따라서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광여기루미네센스 연대측정 등과 같은 연대측정을 실시하여 도출된 연대값을 퇴적층과 유물을 함께 고려하여 유적의 시간을 찾아야 한다. 또한, 유물 포함층의 토양 샘플에 대한 자연과학 분석을 실시하여 유적의 형성과정과 변형 등에 대한 자료를 축적해야 한다.
흔히 우리는 최고, 최초라는 수식어를 좋아하지만, 구석기시대 유물에 대해서는 보기에 좋고 희소성이 있는 주먹도끼나 흑요석으로 만든 작은 석기 같은 유물만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실생활은 이들 유물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석기를 만드는 기술 체계를 복원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요해 보이지 않는 유물도 세심히 다루어야 한다. 우리나라 구석기 유적에서는 차돌로 불리는 석영과 같은 암석으로 만든 유물이 압도적으로 많이 발견되고 있다. 우리나라 도처에 차돌과 같은 암석이 널려 있어 석영으로 만든 유물들은 재료로 획득이 용이했으며, 정교한 석기를 만들기 어려운 암석의 특성상 일회적이고 간편한 석기를 만들게 했을 것이다. 이 외에도, 차돌과 같은 유물들은 구석기시대 전 시기에 걸친 생활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므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