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지가 어디예요? _전곡선사박물관의 20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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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2025.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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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용 (전곡선사박물관 관장)
“여기 유적지가 어디예요?”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유명한 전곡리 주먹도끼가 발굴된 유적이라고 해서 어렵게 찾아왔더니, 정작 눈앞에 펼쳐진 것은 황량한 벌판뿐이던 그 시절. 그때 자주 듣던 질문이 바로 이 말이었다. 물론 지금은 전곡선사박물관이 들어서면서 상황이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사람들에게 선사 유적은 멀고도 어렵다. 우리가 딛고 있는 이 땅이 구석기 유적이며, 발밑에는 수십만 년의 이야기가 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앞에 보이는 것이 없으니 감흥이 덜한 것도 사실이다. 선사 시대는 너무 오래전이라 지금의 우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생각하기 쉽고, 눈에 띄는 유물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전시와 교육에 대한 흥미도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선사 시대의 이야기를 관람객들에게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을까? 주먹도끼가 가진 다양한 매력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할 방법은 없을까? 그래서 전곡선사박물관이 늘 강조하는 것이 바로 ‘생각하고 상상하는 힘’이다. 선사 시대를 즐겁게 경험하려면, 단순히 유물을 바라보는 것을 넘어 생각하고 상상하는 과정을 통해 감정이입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석기? 그냥 굴러다니는 돌 같은데, 이게 나와 무슨 상관이지?”라고 무심하게 바라보기보다는, “이게 수십만 년 전 호모 에렉투스가 만들었던 주먹도끼라니! 이게 지금 내 눈앞에 있다니! 대단하다!”라고 생각하며 박물관을 둘러보면 경험의 깊이가 달라진다. 이러한 생각과 상상이 동반될 때, 전시 관람과 교육 프로그램의 만족도는 훨씬 높아진다.
전곡선사박물관의 대표적인 교육 프로그램은 단연 ‘1박 2일 선사캠프’다. 박물관 개관 당시부터 ‘박물관은 살아있다’라는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명실상부한 전곡선사박물관의 시그니처 교육 프로그램이다. 참가자들은 1박 2일 동안 박물관에서 먹고, 자고, 웃고, 떠들며 선사 체험을 온몸으로 경험한다. 그야말로 ‘선사체험 종합선물세트’ 같은 프로그램이다. 매달 참가 신청이 시작되면 친구들까지 동원해 선착순 경쟁을 벌여야 할 정도로 인기가 높아, 각종 민원이 속출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올해부터는 선착순 모집 대신 공개 추첨 방식으로 변경했다. 박물관 주차장에 발을 디디는 순간부터 박물관 경험이 시작된다는 말이 있는데, 1박 2일 선사캠프는 참가자 추첨에서부터 박물관 경험이 시작되는 셈이다. 앞으로는 프로그램을 더욱 탄탄하게 준비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2025년 전곡선사박물관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최근 박물관이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복합 문화 기관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전곡선사박물관도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공감하며, 관람객들이 다양한 문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특별한 문화적 장소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박물관의 본질적인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 박물관은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수집·보존하고 연구하는 곳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처럼, 조사 연구와 소장품 수집을 통해 박물관의 기초 체력을 튼튼히 다지는 것이야말로 박물관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는 필수 요소다. 가시적인 효과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인 학술 연구를 꾸준히 진행하는 것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올해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중단되었던 해외 학술 교류를 본격적으로 재개하는 해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오는 6월 열리는 아시아 구석기 학회에 참석하고, 일본 홋카이도의 시라다키 유적에서 흑요석 산지를 조사할 예정이다. 또한, 2024년 MoU를 체결한 독일 니더작센의 팔레온 박물관과도 본격적인 학술 교류를 추진한다. 특히, 30만 년 전 나무 창이 발굴된 쇠닝겐 유적의 발굴에 전곡선사박물관 학예사가 참여할 예정이다. 이렇게 학술 조사에서 얻은 성과를 잘 정리해, 관람객들에게 의미 있는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으로 풀어내는 것 역시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전곡선사박물관은 ‘세계 속의 전곡선사박물관’이라는 목표 아래 다양한 국제 교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공립 박물관 중에서는 국내 최고 수준의 국제 네트워크를 자랑한다. 현재 대만의 십상행 박물관, 독일의 팔레온 박물관, 일본의 지하의 숲 박물관 등 해외의 유수한 박물관들과 협력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연천 구석기 축제의 대표 프로그램인 ‘세계 선사체험마을’을 박물관에서 직접 운영하게 되었다. 그동안도 다양한 방식으로 축제에 참여해왔지만, 프로그램의 질적·양적 성장이 필요하다는 연천군의 판단에 따라, 박물관이 연천군의 예산을 지원받아 운영을 맡게 되었다. 전곡패밀리를 자처하는 10여 개국의 참가자들이 한층 풍성해진 프로그램으로 세계 선사체험마을을 준비하고 있다.
2025년, 전곡선사박물관은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더 이상 “유적지가 어디예요?”가 아니라 “전곡선사박물관 가봤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그날까지, 전곡선사박물관은 계속해서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