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기시대, 한반도에는 어떻게, 누가 살았을까? _up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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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23.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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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중국 동북부 지방에서 발견되는 고인류화석과 구석기유적으로 미루어 보아 대체로 100만 년 전까지 올라가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시기의 고인류는 호모에렉투스 단계로서 지금 우리의 직접적인 조상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으로는 북한의 평양시 상원군 검은모루 동굴 유적의 연대가 약 40만~50만 년 전까지 올라가는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북한 학계에서는 검은모루 동굴 유적이 100만 년 전의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기는 어렵다. 지금 교과서에서는 우리 땅의 구석기 시대가 70만 년 전에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중국에서 베이징 원인이 70만~60만 년 전에 살았기 때문에 이를 기준으로 추정한 것이다. 검은모루 동굴에서는 원숭이, 코끼리, 물소와 같은 짐승 뼈들이 쌓여서 돌처럼 굳은 화석들이 다수 발견되었다. 이처럼 더운 지방에서 사는 짐승들이 살았으니, 그 때는 북한 지역도 매우 더운 기후였을 거라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약 10만 년 전에서 5만 년 전 사이에 지구는 다시 빙하기에 들어갔다. 한반도도 추위 때문에 숲이 줄어들었고, 이 시기의 인류들도 따뜻한 지방을 찾아 옮겨가야 했을 것이다. 다시 수만 년이 흘러 좀 따뜻해졌다가 1만 4000년 전부터 마지막 추위가 닥치게 된다. 그리고 1만 년 전부터는 새로운 간빙기에 들어서게 되었다. 지구를 전체를 덮었던 얼음들이 녹기 시작하고, 지구 전체의 기온이 올라가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한반도에는 지금처럼 4계절의 기후 차이가 뚜렷한 온대기후가 나타나게 된다.
한반도에 살던 구석기 사람들이 먹거리를 얻은 곳은 바로 이러한 빙하기와 간빙기를 거치며 형성된 숲에서였을 것이다. 산딸기, 보리수 열매와 같은 단맛 나는 열매를 비롯해 고사리 같은 산나물 종류나 칡뿌리, 더덕과 같은 뿌리도 그들의 먹거리였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 인간이 섭취하는 주요 영양소는 탄수화물과 단백질, 그리고 지방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초가 되는 영양분은 밥과 같은 탄수화물이다. 우리가 다른 어떤 것보다도 밥을 잘 먹어야 하는 것은 밥에서 탄수화물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구석기시대 사람들도 이러한 영양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데 구석기 사람들은 어떤 영양소가 어떤 식물에 있다고 미리 알고 생각하면서 먹을거리를 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여러 가지 먹을 수 있는 것을 다 모으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양분을 고루 섭취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차츰 맛이 좋고 몸에 좋은 음식을 알게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사람 뼈는 모두 북한에서 발견되었다. 북한에서는 고인류를 시기에 따라 고인, 신인으로 구분하는데 고인은 호모 에렉투스나 네안데르탈인, 신인은 호모 사피엔스로 대비해 볼 수 있다. 먼저 고인은 평안남도 덕천시 승리산 동굴, 평양시 역포구역 대현동, 함경북도 화대군 석성리에서 각각 보고된 바 있다. 그중 덕천 승리산 동굴 4층에서 발견된 고인은 ‘덕천 사람’이라 하며 어금니와 어깨뼈가, 역표 대현동에서는 머리뼈가 나왔으며 ‘역포 아이’라 부른다. 이들 뼈의 특징으로 보아 호모 사피엔스 계통으로 볼 수 있는데, 중기 구석기시대에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시기상 ‘덕천 사람’이나 ‘역포 아이’는 대략 10만 년 전에 살았던 우리 땅의 네안데르탈인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덕천 승리산 동굴 ‘덕천 사람’이 발견된 층보다 늦은 시기에 형성된 6층에서도 사람의 아래턱 뼈가 출토되었다. ‘승리산 사람’이라 부르며 이른 시기의 신인이다. 비슷한 시기의 신인은 황해북도 상원군 호장산 용곡 동굴, 황해북도 황주군 청파대 동굴에서도 발견되었다. 그중 용곡동굴에서는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 합쳐서 총 30점의 고인류 화석이 출토되었는데 10개체로 추정된다. 구석기시대 신인은 이른 시기(1유형)와 늦은 시기(2유형) 두 종류가 확인되었다. ‘용곡 사람(1유형)’과 ‘승리산사람’ 모두 이른 시기의 신인으로 우리 땅의 직접적인 조상이라 보기도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이들 뼈는 원시적인 특징과 현대적인 특징이 모두 남아있는 과도기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용곡사람’의 경우 현대적 특징으로 머리뼈가 높고 이마가 곧으며 광대뼈가 앞으로 돌출되어 있거나 뇌수용적이 큰 것과 동시에 과도기적 특징으로 중간 정도로 발달한 입천장과 코 뼈, 눈확, 그리고 앞과 위 머리뼈 불룩이 발달이 미숙하다.
‘승리산 사람’의 경우도 현대 한국인의 머리 형태와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위에서 머리를 내려다보면, 우리 겨레 중 많은 사람의 머리 형태는 좌우가 넓적하고 앞뒤 길이가 짧은 편이다. 앞뒤 길이를 100이라 하면 좌우 너비는 80을 넘어서는데, 이런 머리 형태를 짧은 머리(단두 短頭)라고 한다. 앞뒤 길이에 대한 좌우 너비의 비율이 75보다 낮은 경우를 긴 머리(장두 長頭)라고 하는데, 보통 아프리카나 유럽 사람의 머리 형태가 그러하다. 또 앞뒤 길이를 100이라 할 때, 귀에서 정수리까지 재는 머리 높이가 80을 넘어서면 높은 머리(고두 高頭)라고 하는데, 우리 겨레는 대개 높은 머리이다.
요즘에는 서양식 음식을 많이 먹는 데다, 태어나자마자 부모님이 업어 키우거나 옆으로 뉘어 키워서 머리 앞뒤 길이가 긴 사람이 많아졌다. 하지만 이것은 최근에 서양식 생활 습관이 퍼지면서 체질과 체형이 많이 달라져서 나타난 현상이고, 아직까지 우리의 머리 형태는 짧은 머리인 경우가 훨씬 많다. 그런데 ‘승리산 사람’은 머리의 좌우 너비가 좁고 앞뒤 길이가 긴 형태이다. 북한 학계의 주장대로 ‘승리산 사람’이 곧바로 현대 한국인의 조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승리산 사람’이나 ‘용곡 사람’ 모두 호모 사피엔스로 우리 땅에 살았던 조상 가운데 한 사람이자 호모 사피엔스 인 것은 분명하다.
보다 늦은 시기의 신인으로는 앞에서 말한 용곡 동굴 2유형과 황해북도 승호구역 만달리 출토 고인골이 대표적이다. 특히 만달리에서는 머리뼈, 아래턱뼈, 팔뼈, 다리뼈 등이 나왔고 ‘만달사람’이라 부른다. ‘만달 사람’은 약 25~30세 가량의 남성으로 호모 사피엔스 이지만 역시 원시적 특징(두껍고 발달한 눈두덩)과 현대적 특징(곧고 편평한 이마)가 모두 나타난다. 약 1만 2천 년 전 전후에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전곡선사박물관 상설전에서는 우리 땅의 조상으로 ‘용곡 사람’(7호)와 ‘만달 사람’의 머리뼈(복제)와 복원된 사람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