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형성과정의 이해 2 - 범인을 찾아서... 사건이 일어난 시간을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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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
2023.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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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곡리 구석기유적 E55S20-Ⅳ 모래층과 유물
김기룡 (미래문화재연구원 상임자문위원, 전곡리유적 발굴조사자))
고고학은 과거 인간의 행위를 복원하고자 한다. 그러나 대중들처럼 고고학자들 역시 고고학을 공부할 때 가장 궁금한 것은 ‘과연 언제인가?’에 대한 대답일 것이다. 그리고 결국은 ‘누가?’라는 대답을 찾고자 한다.
지난 칼럼에 이어 과학수사대와 비교해보면, 그들 역시 가장 처음부터 수사하고, 궁금한 부분은 ‘언제?’라는 해답일 것이고, 그리고 그것을 통해 범인을 밝히고자 한다. 그럼 전곡리 유적에 대해서 유적형성학적 관점에서 이 이슈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일단 전곡리 유적은 ‘언제?’ 만들어졌는가 라는 질문에서 한 가지는 명확하게 답해줄 수는 있다. 그 답은 ‘50만 년 전 이전에 만들어진 유적은 아니다’이다. 왜냐하면, 전곡리가 위치한 한탄강과 임진강 지역은 철원 오리산에서 50만 년 전 분출한 용암으로 인하여 형성된 현무암 대지가 형성되었고, 그 현무암층 위에서 석기들이 확인된다. 대중들에게 50만 년은 너무 오랜 시간단위라서 잘 와 닿지 않겠지만, 고고학자들과 지질학자들이 지난 20년 간 피땀을 흘려 100만년 단위로 논쟁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조금이나마 시간을 좁힐 수 있는 노력이라 생각된다. 개인적인 감흥은 뒤로 하고, 또 나아가야겠다.
이제 증거물이 남겨진 시간을 추적해야 한다. 저기에 있는 석기가 언제 만들어졌는지 알아야 한다. 일단 고고학자들은 석기가 발견된 곳을 정밀하게 조사하고, 현장의 퇴적층을 관찰하고, 자연과학자들에게 다양한 도움을 요청한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연대측정이다. 연대측정은 시간의 단서이기 때문에 고고학에서 자연과학적 방법으로 가장 많이 이용한다.
석기가 포함된 흙의 연대를 알 수 있으면 석기의 연대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여기에서 잘못된 수사가 진행되게 된다. 추적자들은 범행시점이 아닌 증거물이 거기에 버려진 시점에서 사건을 바라보게 된다. 도무지 이해가 안가고 사건은 점점 미궁으로 빠진다. 범인도 없고, 범행 동기도 보이지 않는다.
다시 고고학과 유적형성학 얘기로 돌아오자. 전곡리 지역의 구석기유적들 중에는 석기가 발견된 흙에서 연대가 4만 년 전을 가르치는 증거들이 확인되기도 하였다. 그럼 4만년 전에 만들어진 석기인가? 지금도 전곡리유적 주변으로는 주먹도끼들이 우리가 현재 밟고 다니는 땅 위에서도 발견되곤 한다. 처음 전곡리에서도 미군병사에 의해 발견된 주먹도끼도 그랬지만 지표에 많은 석기들은 확인되고 있다. 지금 홍수가 나서 그 석기들이 묻힌다고 가정해보자. 분명 석기는 2023년에 쌓인 흙속에 묻혔지만, 그 석기들이 2023년도 석기인가? 결론적으로 흙의 연대는 추정하는 실마리를 제공해줄 수는 있지만, 범행에 연대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다시 사진을 기억하며 수사에 들어가자.
용암이 과거의 수로를 따라 흐르다가 멈추면, 다시 물이 흐른다. 물은 낮은 곳으로 굴곡진 곳으로 흘렀으며, 어느 순간부터 물의 양이 많아지면서 하천이 다시 형성되고 범람하기 시작한다. 용암에 의해 전곡리 같이 낮은 대지를 형성한 곳은 여러 곳으로든 물이 흐르고 주변으로 지속적으로 범람하면서 모래층을 형성하고, 깎이고, 또 쌓이고 연속적인 반복하게 된다. 그러다가 깊은 계곡이 생기면서 많은 양의 물이 지속적으로 그 곳으로 이동하고 자연스럽게 침식활동이 빨라진다. 어느 순간에는 범람을 하여도 전곡리 대지 위로 넘어오지 못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때부터 물에 의해 형성된 모래질의 토양은 토양화 작용으로 인하여 점질로 바뀌고, 상부로 지속적으로 점질토가 쌓이게 된다.
그럼 사진 속 모래층 상부에 있는 이 석기들은 도대체 언제 것인가? 최근 전곡리 일대에서 고고학자들과 지질학자들이 함께 연구한 결과에서 현무암 상부의 점토층에 대한 연대가 약 23만 년 전이라는 발표가 있었다. 이러한 결과에서 사진의 모래층 위에서 확인된 유물들은 유적형성학적으로 볼 때, 50만 년 전보다는 젊으며, 점토층에서 확인된 23만 년 전과 비슷하거나 이 보다는 오래되었을 것을 추측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수사에서는 이정도 시간 폭만 찾아낼 수 있었다. 앞으로 수사는 계속될 것이고, 더 많은 사건의 시간이 밝혀지게 될 것이다.
다음 화에서는 구석기유적에서 확인되는 자연적인 변형으로 인한 형성과정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과학수사대에서도 사건의 증거물들이 변형되면 수사에 혼선을 가지고 온다. 그래서 이 증거물들이 변형되었는지? 아닌지? 그것을 먼저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매우 안타깝게도 개인적으로 대부분의 고고학 유적도 변형이라는 것이 많이 이루어지고, 많은 고고학자들이 이를 간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전곡리 유적과 같이 20만 년 이라는 시간을 가진 유적은 많은 변형을 가질 수 밖 에 없다. 강산도 10년이면 변한다고 하는데, 그러한 변화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 사진보충설명 : 전곡리 유적 2000년 시굴조사 당시 기준토층을 사용하였던 E55S20-Ⅳ의 사진으로 위에서부터 여러 층에 걸쳐서 유물이 확인되었으며, 최하부에서 확인된 유물층을 노출한 광경이다. 이 유물층은 현무암 위로 형성된 모래층 위에 위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