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용의 구석기통신 _ 사냥꾼이 된 인류와 공동체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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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
2023.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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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용(전곡선사박물관 관장)
지구 위 생명의 역사는 육식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캠브리아기 말기 단세포생물이 다세포생물로 급속히 진화를 시작한 이래, 생명체의 진화는 다른 생명을 사냥하여 먹잇감으로 만드는 과정의 반복이었기 때문이다. 잡아먹으려는 자와 잡아 먹히지 않으려는 자의 군비경쟁, 지극히 전투적인 구호지만 생명 진화의 현실이 그랬다.
인류의 역사도 예외는 아니어서 커다란 뇌를 장착하고 두 발로 걸으며 양손을 사용해 도구를 만들어 내는 오늘의 우리에게 사냥으로 잡은 짐승의 고기를 먹는 행위 즉 육식은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활짝 열게 해준 비밀의 열쇠와 다름이 아니다. 헨리 번 (Henry Bunn)의 말처럼 고기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고기를 향한 인류의 욕망은 두꺼운 짐승의 가죽을 찢어낼 수 있는 날카로운 석기를 만들게 하였다. 석기를 손에 준 인류는 마침내 보다 손쉽게 동물의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되었고 결국 우리의 신체 가운데 가장 대량으로 에너지를 소모하는 뇌의 크기를 키울 수 있게 되었다. 동물의 뇌와 몸의 상대적 비율을 복잡하게 계산한 대뇌화 지수라는 것으로 볼 때 인간의 뇌는 다른 동물들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크다고 한다. 만일 초기 인류가 육식을 시도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렇게 커다랗게 뇌를 키울 수 없었을 것이다. 한편 커진 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에너지 즉 고기가 필요했고, 고기의 풍부한 영양소는 다시 뇌의 크기를 키웠다. 점점 커지는 뇌는 머리가 점점 좋아지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육식이 가져온 놀라운 피드백 효과다.
인간의 뇌는 하루 소비 열량의 약 20% 정도를 소비한다고 한다. 뇌를 키우기로 (?) 한 인류는 뇌가 소비하는 열량을 고효율의 단백질과 지방으로 충당하기 위해서 사냥꾼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사냥꾼이 된 인류에게는 육식이 가져온 뜻밖의 숙제가 생겼다. 잡기 쉬운 동물들 (예를 들면 토끼 같은, 물론 상대적으로 잡기 쉽다는 뜻) 즉 작은 동물들의 고기에는 지방질의 함량이 매우 적어서 작은 동물들의 고기만 계속해서 먹게 되면 심각한 영양 불균형에 빠지게 되기 때문에 가끔은 매머드나 들소처럼 커다란 동물들도 잡아서 먹어야 했다.
커다란 동물은 사냥하기 위험한 동물이다. 이런 커다랗고 위험한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협력이 절대적이었다. 두발 걷기로 단련된 지구력으로 무장하고, 언어로 소통하며 무리를 지어 집요하게 달려드는 사냥꾼 인류에게 적수는 없었다. 사냥으로 다져진 공동체 의식은 인류를 지탱하고 발전시키는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매머드처럼 커다란 동물을 사냥하는 것은 언제나 위험 부담이 따르는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일까? 인간의 대형동물 사냥은 사자와 같은 식육 동물들의 사냥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다. 사자는 배가 부를 때는 사냥하지 않지만, 인간은 배가 불러야 대형동물을 사냥했다는 것인데 대형동물을 사냥하는 것은 단지 먹거리를 얻기 위한 차원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집채만 한 매머드를 무리 지어 사냥하면서 위험을 함께 하고, 함께 힘들여 사냥한 엄청난 양의 매머드 고기 (코끼리 한 마리가 대략 빅맥 900개 정도의 열량이라고 하니 매머드 고기의 양을 짐작해 보시길 바란다)를 서로 나눠 먹으면서 다져지는 공동체 의식이야말로 사냥꾼 인류가 추구한 진정한 사냥의 의미였다.
서서히 코로나19의 끝이 보이는 요즘이다. 우리는 함께 고통을 겪었고, 우리 모두의 노력으로 마침내 코로나19 극복의 문턱에 와있다. 우리를 지탱해 주었던 힘, 사냥꾼 인류의 공동체 의식을 다시한번 되돌아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