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류(쥐, RODENTIA)가 들려주는 구석기시대 자연환경, “궁금하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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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23.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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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제4기 갱신세 동물화석 출토유적과 쥐 그리고 빙하기에 따른 해수면 변동 모습
박지효 (한양대학교박물관 학예연구사)
여름과 겨울이 찾아오면 <기록적인 한파, 기록적인 폭우, 기록적인 더위>와 같은 기상예보가 어김없이 우리를 맞이한다. 이와 같은 단어들을 떠올리다 보면, ‘기록’되기 이전 기후와 자연환경은 어땠을까? 하는 궁금함이 살며시 생겨난다. 현재보다 앞선 과거의 자연환경은 ‘고환경(古環境, paleoenvironment)’으로 불리는데 여기에는 동물과 식물의 서식환경을 뜻하는 생물상(biota) 및 온도·습도와 같은 기후 등도 포함된다. 한반도의 아주 먼 과거, 구석기시대의 고환경은 어떠했으며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한국에서 구석기시대 연구가 시작된 1960년대 이후로 많은 연구자들은 고환경을 복원하고 해석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기 위해 다양한 연구를 시도하였다.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유적에서 출토되는 동물의 종(種)을 밝히고 서식가능한 환경을 특정하는 ‘동물고고학(zooarchaeology)’이 함께 발전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구석기시대 동물은 곰, 호랑이, 넓적큰뿔사슴, 매머드, 털코뿔이, 원숭이 등과 같은 대형포유류들이다. 이들은 특정한 기후에서만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유적에서 발견되면 유적형성 당시의 자연환경을 대변해주는 ‘지시화석(index fossils)’으로 분석되었고 구석기시대 동물고고학 연구의 중요한 대상으로 여겨졌다. [그림 1]과 같이 석회암지대 동굴유적에서 확인되는 동물화석에는 대형포유류 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소형포유류도 포함되어 있다. 기존 연구에서는 인류와의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근본적인 이유로 인해 박쥐류·설치류와 같은 소형포유류에 관한 연구는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특히 설치류는 여타의 포유류에 비해 기후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먹이습성과 행동양식이 상대적으로 빠른 진화속도를 거쳤기 때문에 고환경 복원에 유용하다. 설치류의 진화정보는 이빨을 포함한 전체 머리뼈대에 흔적이 남아서 유적에서 발견되는 머리뼈대 관찰 및 분석을 통하여 특정한 종을 추론해낼 수 있다[그림 2‧3]. 나아가 현생종의 서식환경에 대한 비교연구를 기반으로 구석기시대 설치류가 생존한 자연환경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되고 유적 형성시기의 자연환경에 대한 이해가 가능해진다.
그 사례로 강원도 정선에 위치한 매둔 동굴유적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 유적은 해발 323m의 석회암지대에 형성된 동굴유적으로 구석기·신석기·청동기시대에서부터 근·현대까지 이르는 광범위한 유물(석기·동물뼈·사람뼈(신석기, 청동기)·토기·기와 등)이 확인된 곳이다. 교란층을 제외하고 구석기(40-30 kya cal BP)~청동기 문화층에 걸쳐 출토된 설치류의 낱개 어금니와 머리뼈를 분석한 결과, 총 2과 10속 13종의 설치류가 확인되었고 최소마리수(MNI: Minimum Number of Individuals)는 약 34마리로 계산되었다. 다양한 종적구성 가운데 산쥐, 간단이빨쥐, 비단털등줄쥐, 라티셉갈밭쥐 등이 출토되는 것은 해당 화석이 포함되어 있던 퇴적층의 형성 당시 기후가 현재보다 서늘하고 건조하였음을 지시한다. 이와 동시에 자연환경의 변화에 다른 종들보다 덜 민감하게 반응하여 어떠한 환경에서도 잘 적응하는 집쥐, 등줄쥐, 비단털들쥐 등도 확인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전체적인 개체수를 고려할 때, 구석기시대 정선 매둔 동굴유적 일대 자연환경은 산악지형을 바탕으로 한 낮은 온도의 기후대였지만, ‘생태학적 다양성(ecological diversity)’이 갖추어진 곳이었다.
갱신세에 한반도는 빙하 주변지역(周氷河)으로 빙하의 직접적인 영향권 아래에는 없었지만 전 지구적 해수면 하강으로 인해 중국의 서북부지역 및 동남부지역 그리고 일본과 넓게 연결되었다[그림 5]. 따라서 고지대 삼림~저지대 초원에 이르는 다양한 생태환경 조성과 더불어 북·남방계통의 다양한 종이 한반도 내로 유입될 수 있었고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약 3만 년 전 정선 매둔 동굴유적에서는 서식환경이 혼합된 설치류가 출토되는 양상을 보인다.
음침한 골목에서 마주하는 쥐는 여전히 사람과 가까이하기에는 멀게만 느껴지는 다소 징그러운 존재이지만, 구석기시대 유적에서 화석으로 마주하게 되는 쥐는 “어떤 환경에서 살았는지 궁금하쥐?”라는 질문으로 우리의 궁금증을 유발하고 고환경에 대한 비밀을 풀어줄 수 있는 열쇠 그 자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