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데기가 알려주는 인류진화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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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23.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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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의 길에 선 고인류
이한용 (전곡선사박물관 관장)
이제는 전설이 된 영화 올드보이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은 아마도 최민식 배우가 산낙지를 통째로 씹어먹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산낙지가 혐오하는 한국 음식 설문조사에서 종종 1위를 차지하는 데 결정적 공헌을 한 장면이다. 산낙지와 함께 혐오 음식 1.2위를 다투는 음식이 있으니 바로 번데기다. 미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한 방송인이 왜 번데기를 못 먹느냐는 질문에 번데기는 ‘정말 벌레 그 자체같이 생겼잖아요 ~’ 라고 대답하는 장면을 보면서 크게 웃은 적이 있다. ‘맛있는 영양간식’ 이라는 구호가 선명한 통조림으로까지 활약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번데기가 의문의 일패를 당한 순간이었다.
번데기를 안(못) 먹는 사람들에게 번데기는 그야말로 먹기 어려운, 먹어서는 안 될 음식의 대명사인 벌레를 대표한다고 하겠다. 특히 식생활이 개선된 서양인의 입장에서는 일종의 동양 비하의 한 방편으로 번데기를 무시하고 있지만 사실 인류의 진화에서 벌레 즉 곤충을 먹는 소위 ‘곤충식’은 인류의 진화 특히 먹거리의 확장 측면에서 엄청난 공헌을 한 음식이며 지금까지 매우 저평가된 음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인류 진화의 성공방정식은 두발걷기, 도구사용, 커다란 뇌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진다는 설명이 지금까지의 정설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유지비가 많이 드는, 즉 열량 소모가 많은 뇌의 크기를 키우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단백질이 충분히 공급되어야 했는데 양질의 단백질 섭취를 위해 인류는 두발걷기로 자유로워진 두 손으로 도구를 만들어 짐승을 사냥하고 그 고기 즉 단백질을 맘껏 먹게 되면서 뇌의 크기도 키우고 잘 유지할 수도 있게 되었다는 설명이 ‘사냥꾼인류’로 상징되는 멋들어진 해답이다. 하지만 고고학 증거에 따르면 초기 인류는 ‘사냥꾼인류’가 아니라 ‘사냥감인류’ 였다. 막강한 포식자들 틈 속에서 하루하루를 견뎌내야 하는 비루한 삶의 연속이었지만 사냥꾼인류로 거듭나기 위해서 무엇이든 먹을 수 있는 ‘잡식’의 길을 선택한 초기 인류에게는 비장의 무기 곤충이 있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특히 곤충의 애벌레는 잡기도 편하고 영양도 풍부한 뛰어난 먹거리였다.
최신 연구에 따르면 도구를 만들지 못해 뛰어난 사냥꾼으로 진화하지 못하고 멸종했던 고인류 파란트로푸스 보이세이도 두뇌 용량이 일정 부분 증가했다고 한다. 그 비밀의 열쇠가 바로 벌레를 먹는 곤충식에 있다는 설명이다. 기후변화와 식량 위기의 시대, 미래의 먹거리로 관심을 받고 곤충이 초기 인류에게도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는 학설이 확실하게 자리를 잡게 되면 지금까지 정설로 여겨졌던 인류 진화의 성공방정식을 풀기위한 새로운 해법을 모색해야 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