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형성과정의 이해 1 - 유적의 형성과정 연구는 과학수사다!
-
관리자
2023.08.29
-
- 0
전곡리유적 지층 조사 모습
김기룡 (미래문화재연구원 상임자문위원, 전곡리유적 발굴조사자)
나의 선생님은 ‘고고학은 인문학이 아니라 자연과학이다.’ 라고 항상 강조하셨다. 이 이야기는 나의 고고학 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 되었다. 이 두 가지의 사전적 의미를 보자면, 인문학은 인간과 인간의 문화에 관심을 갖는 학문 분야이다. 이에 반하여 자연과학은 자연 현상의 보편적 법칙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이러한 사전적 의미에서 보면, 고고학은 분명 인문학의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탐구하는 방법론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특히 구석기유적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러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비유는 과학수사대이다. 우리가 TV에서는 보는 과학수사대는 사건이 발생하면, 다양한 방법들을 사용해서 그 사건이 일어난 시점의 상황을 유추한다. 그리고 화면에서는 그때 상황을 재구성하여 보여주고, 그 다음에 범인의 행동을 보여준다. 그리고 다시 사건 현장으로 돌아와 현재 사건현장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준다.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은 분명 과학이다. 그럼 고고학에서는 어떨까?
고고학자는 땅을 파서 과거의 흔적을 찾아낸다. 분명 땅속에 과거의 흔적이 남아있다. 그런데 고고학에서의 흔적은 과학수사대의 영역처럼 몇 시간 전, 수 일 전, 수십 년 전의 일이 아니다. 100년 전, 1000년 전, 내가 다루는 구석기시대는 심지어 수십 만년 전 사건에 대한 단서를 다룬다. 고고학자는 과학수사대처럼, 처음 사건을 발생할 때(유적에서 사람이 흔적을 남길 때), 인간 행위에 대한 실마리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과학수사대도 그러하듯이 사건이 발생하고 지금의 현장 모습이 나오기까지 다양한 과정들에 대한 탐구가 필요하며, 이것이 유적형성과정을 연구하는 기본적인 목적이다. 그 과정에 대한 정확한 해석을 위해서는 자연 현상의 보편적 법칙을 알아야하고, 그래야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유적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10만 년 전에 어떤 사람이 전곡리에서 사냥을 해서 사슴을 잡고, 맛있게 먹고 다른 곳으로 갔다고 가정해 보자. 그 사람은 돌을 깨부수어 사냥도구를 만드는 과정을 거쳤을 것이고, 사냥기술에 능숙했던 과거 그 전곡리안은 재빠르게 사슴을 사냥해서 편안하게 먹기 위해 아까 석기를 만들었던 장소로 사슴을 가지고 왔다. 그리고 사냥한 음식을 먹기 위해 불을 피우고, 사슴을 먹기 좋게 해체하기 위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나무 꼬챙이에 꽂아서 맛있게 구워 먹은 후 그 전곡리안은 다시 다른 곳으로 이동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다양한 흔적들이 남기 마련이다. 과학수사대처럼 며칠 안에 그 흔적을 발견한다면 더욱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가정한 것처럼 유적에서는 10만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러한 과정에서 유기물(사슴의 잔해, 나무 꼬챙이 등)은 썩어서 없어지고, 다행히 무기물인 돌은 남아있어 유적에서 확인되었다. 그런데 그 돌들 역시 강물이 넘치고, 비가 오면서 여기저기 흩어진다. 이제는 언제,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지찾는 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과정이 바로 유적이 형성되는 과정이며, 고고학자들은 이러한 과정을 탐구하여 불가능할 것 같은 과거에 대하여 복원하고, 더욱 많은 인간행동에 대한 증거들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생각해보면, 아마도 고고학자들은 과학수사대보다 엄청난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
고고학에서는 유적형성과정을 탐구하기 위해 퇴적물의 형성과정, 유물의 이동과 분포 패턴, 퇴적물의 형성시기 등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는데 그 방법론적인 접근에 있어서는 분명 자연과학이 중심이 된다. 그리고 그러한 자연과학적 결과물을 가지고 다시 인문학적 답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지금도 고고학자들은 현재를 단서(고고학적 증거)를 통해 범행(인간 행동)의 원인과 과정을 찾으려 현장과 연구소에서 땀을 흘리고 있다. 이 글을 시작으로 앞으로 2번에 걸쳐 고고학자들이 전곡리 유적의 형성과정을 밝히기 위해 사용한 다양한 자연과학 방법론을 소개하고, 그 결과를 인문학적으로 해석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