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요석 탐구 4 – 흑요석 : 어디서, 어떻게,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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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2023.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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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흑요석의 표면
박경남 (연세대학교 박물관 학예연구사)
지난 세 차례의 칼럼을 통해 흑요석의 형성과 제작기술, 그리고 연구 현황을 탐구하였다. 이번에는 우리나라의 구석기시대 흑요석 석기의 특징을 조금 더 깊이 있게 살펴보자.
석기를 관찰하다 보면 간혹 돌 자체에서 나오는 아름다움이 느껴지곤 한다. 특히 ‘검게 빛나는 돌’ 흑요석은 그 어떤 돌보다도 그러한 느낌이 강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양의 흑요석을 석기 제작에 이용하지는 못했다. 그 이유는 한반도에 흑요석을 만들어내는 점성이 강한 마그마로 만들어진 화산이 없기 때문이다.
흑요석 석기는 우리나라의 첫 구석기 유적인 공주 석장리 유적에서 확인된 이래로 현재까지 50여 곳에서 6천여 점이 발견되었다. 전곡리 유적과 이웃한 한탄강변의 여러 유적에서도 2천 여 점이 넘는 흑요석 석기가 발굴되었다. 이처럼 흑요석은 중부지방인 경기, 강원 내륙, 충청도에서 주로 확인되며 전라, 경상도에서도 적게나마 발견되고 있다. 다만 지금까지 발견된 흑요석 석기는 10㎏이 채 되지 않는다. 하나의 구석기시대 유적에서 수 톤에서 수십 톤의 석기가 발굴되는 것에 비하면 흑요석의 무게만으로도 아주 귀하고, 구하기 어려웠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흑요석의 고향은 어디일까? 앞서 <흑요석 탐구 3>에서 언급된 러시아 Kuzmin 박사 등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그동안 여러 유적의 산지 분석이 이루어졌다. 분석 결과, 전라남도 장흥 신북 유적 등 일부를 제외하면 흑요석 석기의 고향은 대부분 백두산으로 밝혀졌다. 이는 구석기시대에 흑요석이 적어도 400㎞를 이동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사람과 사람의 손으로 전달되어 도보만으로! 이처럼 구석기인이 흑요석을 지니고 먼거리를 이동한 원동력은 무엇이며, 오랜 시간 흑요석에 집착(?)하게 만든 원인은 무엇일까?
구석기시대에도 인류는 꾸준히 기술의 발전을 이룩해갔으며, 마침내 ‘대량 생산 체계’ 단계에 이르렀었다. 이러한 체계를 나타내는 형식의 석기는 돌날과 좀돌날이다. 특히 좀돌날은 석기의 폭이 12㎜ 이내의 아주 작은 ‘칼날’로 이해할 수 있다. 한반도에서 좀돌날이 생산된 시기는 후기구석기시대에서도 늦은 시기인 약 25,000~12,000년 전 시기이다. 흑요석이 발견되는 시기와 일치한다. 다시 말해 한반도 구석기시대 흑요석은 만 년이 넘는 시간 동안 10㎏밖에 되지 않는 아주 적은 양만이 좀돌날을 제작하기 위해 400㎞가 넘는 거리를 이동해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흑요석은 어떠한 형태로 이동해왔을까? 수백 점의 흑요석 석기가 발굴된 남양주 호평동과 포천 늘거리 등에서는 유적에서 좀돌날이 제작된 흔적(좀돌날몸돌, 때림면 스폴spall 등)을 확인할 수 있다(그림 1). 그러나 좀돌날 제작을 위해서는 실제로 돌감의 낭비가 심하다. 쉽게 말해 버려지는 돌의 양이 확보되어야만 제작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현재까지 확인된 남한의 구석기유적에서 흑요석은 돌이 충분히 확보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어서 자갈이나 모난돌 형태의 돌감보다는 한 차례 가공된 형태로 이동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림 1. 남양주 호평동 유적에서 확인된 좀돌날 제작 흔적
여기서 주목되는 사례는 남부지방의 대구 월성동 유적이다. 월성동에서는 돌날이나 좀돌날이 제작되었던 흔적이 확인되지 않았으나 완성된 형태의 돌날과 좀돌날은 다량으로 발견되었다(그림 2). 특히 위, 아래 부분이 깨어진 흑요석 돌날은 날카로운 날을 그대로 이용할 수 있었을 것이며, 약간의 잔손질을 하여 긁개, 밀개, 새기개 등 도구로 변형할 수 있는 ‘半製品’이었을 것이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어느 곳에서도 흑요석 돌날몸돌이 발견되지 않은 상황에서 흑요석 돌날이 남부지방에서 확인되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림 2. 대구 월성동 유적에서 발견된 흑요석 돌날
다시 말해 대체로 남한 구석기시대의 경우 백두산에서 가져온 흑요석을 낭비할 수 없는 환경 조건에서 중부지방 일부 유적에서는 그래도 좀돌날 제작이 이루어졌지만, 더 먼 남부지방까지는 좀돌날을 제작할 만큼 많은 양이 이동하지는 못하고 완성된 형태의 돌날 등이 유적으로 들어왔다. 이를 토대로 볼 때, 아직 확인되지 않은 휴전선 이북(북한지역) 지역에서 돌날로 대표되는 반제품 형태로 흑요석 석기가 제작되어 한반도 중부지방과 남부지방에 까지 이를 정도로 먼 거리를 이동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흑요석 석기는 구석기 전공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관심을 갖고 관찰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가 풀지 못한 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채 오늘도 어느 박물관 한쪽에서 반짝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