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형성과정의 이해 3 _ 조작된 증거! 사건은 미궁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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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2023.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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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룡 (미래문화재연구원 상임자문위원, 전곡리유적 발굴조사자)
이제부터 조금 더 복잡해진다. CSI의 그리섬반장과 그의 동료들은 사건현장에서 조작된 증거들에 대해서 면밀히 살피며 사건을 해결해 간다. 그리고 전곡리유적을 탐구하는 고고학자들은 퇴적층에서 나온 유물 증거들을 가지고 초기인류의 행동을 복원하고자 노력한다. 유기물로 증거들은 썩어서 확인할 수 없으며, 단지 오랜시간이 지나도 썩지 않은 돌조각들이 유일한 증거이다.
전곡리인들이 살았던 증거들은 여기저기 남아있으며, 무려 1만개가 넘는 증거물들이 사방에 흩어져 있다. 하나의 사건도 아니고 여러 개의 사건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비슷하게 생긴 석기들이 23만년 전의 퇴적층에서도 나오고, 10만년 전, 3만년 전 등으로 추정되는 퇴적층에서도 나오고 있다. 고고학자들은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CSI의 팀이 그랬던 것처럼 우선 증거가 조작되는 상황을 살펴보자. 범인 중에 하나는 한탄강에서 범람한 물이다. 사건현장은 물에 의해 변형된다. 그림 1과 같이 물의 의해 변형되는 경우 사건 현장 전체가 사라지게 되거나, 사건현장에서 일부 증거물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특별한 경우 물에 의해 석기의 바닥이 점점 침식되어 석기가 아래로 이동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또 다른 변형은 전곡리유적의 상부의 점토층에서 이루어진다. 용암이 대지를 형성한 이후 퇴적층은 곳에 따라 굴곡진 경사면이 형성되고, 그림 2와 같이 이러한 굴곡진 경사면을 따라 우수와 중력에 의해서 석기들은 흘러내리거나 형성된 곡부를 따라 석기들이 모이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시간이 다른 사건들의 증거물들이 퇴적층이 깎여나가면서 한 곳으로 모이기도 한다.
그림 1. 모래층에서의 변형과정 모식도
그림 2. 경사지에서도 변형과정 모식도
또한 같은 퇴적층의 유물들이 서로 다른 퇴적층에서 확인되기도 한다. 그리고 나무뿌리나 땅속에서 사는 동물들에 의해서도 유물들이 움직일 수 있다. 이렇게 움직인 유물들은 서로 다른 퇴적층에서 위치할 수도 있다. 2008~2009년 국방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한 유적에서는 서로 다른 3개의 층에서 서로 붙는 유물들이 확인되기도 하였다. 붙는 유물이란? 구석기연구자들이 소위 접합석기라고 말하는 것인데, 하나의 돌에서 떼어진 유물들이 서로 붙는 것으로 당연히 같은 시기 작업이 이루어졌을 것이지만, 서로 다른 퇴적층에 존재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로 서로 다른 퇴적층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연적 변형과정 이외에도 인위적 변형과정도 일어날 수 있다. 인간이 지속적으로 공간을 영위하며 살았다면, 의도적으로도 의도치 않게도 변형이 일어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많은 구석기유적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전곡리일대의 구석기유적들에서는 이러한 현상들이 다수 관찰된다. 전곡리 축제에서 석기를 만들어보면 본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이 과정에서는 많은 파편들이 발생한다. 그러나 유적에서 확인되는 유물들이 발굴된 면적에 비하여 매우 적다. 특히 전곡리유적과 같이 이른시기 구석기유적에서는 더욱 적게 확인되고(그림 3), 5㎝ 미만의 작은 파편들이 확인되는 비율은 매우 낮으며, 대형의 무거운 석기들이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이유는 지속적인 변형으로 인하여 유물들이 제자리에서 이동하였으며, 증거가 조작된 경우이다. 이렇게 조작된 증거들로는 정확한 상황을 판단하기 어렵다. 언제? 누가?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미궁에 빠지게 된다. 오히려 이러한 조작된 증거를 가지고 사건을 해결하려고 하면 엉뚱한 방향으로 사건이 해결된다.
그림 3. 전곡리유적 1992년 발굴조사 유물출토 광경
유적형성과정에 대한 연구는 이러한 변형된 상황에 대해서 보다 객관적인 방법을 통해 변형과정을 이해함으로써 보다 정확하게 인간 행위를 복원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다. 최근들어 많은 구석기연구에서 유적형성과정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은 우리나라에서 이에 대한 연구는 미비하다. 필자는 1만년이 넘는 구석기유적에서는 방금 전에 일어난 사건 현장처럼 증거들이 그대로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리고 그 유적의 지형적인 조건에 따라 정도는 달랐겠지만 변형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 고고학자들은 분명 당시의 인간 행위에 대한 복원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변형된 증거에 대한 인식이 무엇보다 우선으로 이루어져야 보다 객관적인 해석이 가능하며, 무고한 사람을 범인으로 오해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아직까지 우리는 전곡리 땅을 밟은 초기인류에 대해서 명확한 정답을 찾지 못하고 있지만, 과거 증거에 대한 고고학적 지식과 자연과학적 탐구의 노력은 언젠가는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며, 이야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