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전 <고기> 읽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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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2023.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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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중인 구석기시대 사슴 윗머리뼈와 뗀석기, 도살의 흔적일까?
이서영 (전곡선사박물관 학예연구사)
기획전 <고기>가 개막한 지 10일이 흘렀다. 항상 그렇듯 전시를 열어놓으면 끝일 것 같지만 나에게만 혹은 남에게만 보이는 작은 부분들을 수정하느라 계속 개막 준비를 하는 것과 다름없이 지내게 된다.
처음 이 전시를 기획하게 됐을 때 고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무척 신나는 일이었다. 선사박물관에서 일하고 구석기시대를 공부하면서 항상 궁금한 주제였기 때문이다. 구석기인을 생각하면 흔히 떠오르는 ‘사냥꾼’의 이미지, 그 사냥꾼이 먹었을 ‘고기’의 정체를 밝혀낼 기회가 드디어 생긴 것이다. 특히 고기는 지금도 누군가의 밥상에 빠지지 않고 오르는 생활과 아주 가까운 소재이다. ‘고기’로 선사시대와 현대를 이어보겠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솟구쳤다. 물론 전시를 준비하며 그 자신감은 금방 사그라들었다.
기획전 <고기> 입구
전시는 크게 3부로 나뉜다. 1부 ‘왜 고기인가?’에서는 수백만 년 전 고기를 처음 먹기 시작한 인류에 대해 다룬다. 약 250만 년 전 극심한 기후 변동으로 인한 식생의 변화로 인류의 식단에 고기가 추가되었고, 고기를 적극적으로 먹었던 호모Homo 속만이 살아남아 우리 호모 사피엔스까지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석기는 동물의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대신하여 고기를 발라먹고 골수를 깨어 먹을 수 있게 해주었다. 석기를 만드는 행위 자체가 뇌의 발달에 영향을 주었고, 그렇게 만든 석기를 사용하여 먹은 고기가 뇌와 신체의 발달을 다시 촉진한다. 석기-뇌-고기는 인류 진화의 중요한 트라이앵글이었다.
전시 준비를 위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많이 나온 질문이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무슨 고기를 먹었나요?’이다. 구석기시대 사람이 미라 상태로 발견된다면 정확한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현재로서는 발굴되는 동물뼈를 분석하여 고기의 종류를 알아낼 수 있다. 한반도에서 발견된 43개의 동굴유적에서 가장 많이 발견된 뼈는 사슴뼈이다. 충북 단양의 구낭굴에서는 무려 97%의 뼈가 사슴의 것으로 밝혀졌다. 한반도에 살던 구석기인은 사슴고기를 가장 즐겨 먹었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고기는 단연 돼지고기이다. 한국인은 1년에 닭고기와 소고기를 합한 것보다 많은 양의 돼지고기를 먹는다.
2부 ‘고기를 어떻게 먹었을까?’는 이번 전시의 핵심 코너이다. ‘사냥하고(Hunting)-잘라서(Butchering)-요리한 후(Cooking)-먹고(Eating)-버리는(Scrapping)’ 고기의 일생을 다룬다. 처음에는 일종의 스캐빈저(scavenger, 죽은 동물을 먹는 동물)였던 인간은 중기 구석기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사냥을 시작한다. 40만 년 전 층에서 발견된 독일 쉐닝겐 창Schöningen Spear은 당시 사람들이 먼 거리에서 상당한 크기의 동물을 사냥할 능력을 갖췄음을 알려준다. 후기 구석기시대에는 돌날 제작 기법의 발달로 더욱 정교한 사냥도구가 나타나고 창던지개Atlatl를 사용하여 창을 더 멀리, 더 강력하게 던질 수 있게 되었다. 사냥은 선사박물관의 단골 주제로 이미 많은 연구가 이뤄졌다. 하지만 그 이후의 과정은 물질적인 증거가 남기 어려워 연구가 쉽지 않다.
기획전 <고기>의 2부 모습
동물 뼈에 남은 자른 자국Cut marks으로 당시 사람들의 고기 해체 방식을 알아볼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나온 뼈를 대상으로 구석기시대의 도살 방식을 밝히는 연구는 아직 없다. 하지만 유적에서 자른 자국이 발견되기도 하는데 곰 주걱뼈 등 실제 우리나라 유적에서 나온 동물 뼈에 남은 자른 자국을 돋보기로 관찰할 수 있도록 전시해 두었다. 요리는 불을 사용하여 직접 굽거나 동물의 내장, 가죽 등을 그릇 삼아 물과 함께 끓여 먹었을 것으로 보인다. 강원도 정선 매둔동굴에서 나온 불탄 뼈를 전시해 두었는데 이는 모두 뼈의 끝부분이다. 살점이 많은 몸 안쪽 뼈는 불의 영향을 덜 받아 이들처럼 부서지거나 타지 않았기 때문에 끝부분의 뼛조각들이 주로 불탄 채 발견된다. 골수는 몸 안에서 합성되지 않는 비타민 D를 섭취할 수 있어 구석기인들에게 고기만큼 중요한 식량이었다. 제천 점말동굴에서 출토된 깨진 뼈는 골수를 먹기 위해 사람이 뼈를 깬 흔적을 보여주는 유물로 아마도 이때 함께 사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망치와 함께 전시하였다.
이 모든 사실은 물질적인 증거들에 대한 고고학적 분석을 통해 알 수 있다. 구석기인들이 버린(혹은 남긴) 쓰레기들이 우리에게는 소중한 유물이 되어 당시의 삶을 재구성할 수 있게 해준다. 고기의 마지막 단계를 Scrapping으로 잡은 이유이다. 프랑스 라자레Lazaret 동굴 대형 복제 유구를 전시하여 구석기인이 머물다 간 흔적을 조금 더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3부는 신인류 ‘호모 비게투스Homo Vegetus’의 출현을 다룬다. 고기를 먹으며 생존해 지금에 이른 호모속에 고기를 먹지 않는 새로운 종이 출현한 것이다. 물론 이는 비유적 표현이지만 몇 만 년 후에 어떻게 분류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닌가? 자연 속 동물을 꼭 필요한 만큼 잡아 고기로 먹었던 구석기인들과는 달리 지금은 동물의 생물학적 습성과 기본적 욕구를 완전히 무시한 채 ‘고기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통계적 예측에 따르면 2050년까지 세계 고기 소비량은 꾸준히 증가한다. 그러는 동안 사람이 먹을 곡물의 양은 더 줄어들고, 온실가스 배출량은 더 늘어나고, 자연 수명의 1/10도 채우지 못하고 도축되는 동물들은 더 많아질 것이다. 우리 호모 사피엔스가 과연 이름처럼 ‘지혜롭게’ 고기를 먹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다.
이번 전시를 꿰뚫는 키워드를 ‘다양성 존중’으로 잡았다. 유물을 디스플레이하는 입장에서는 훨씬 손이 많이 가지만 키가 작거나 휠체어를 탄 분들도 편하게 유물을 볼 수 있도록 낮고 경사진 전시대를 만들었다. 일반적인 전시 리플릿을 이해하기 어려운 분들을 위한 ‘더 쉬운 전시 안내서’도 만들고 있다. 이 전시를 본 모두가 구석기시대부터 지금까지 먹어온 고기와 관련된 지식을 얻음과 동시에 다양한 사람, 다양한 동물, 다양한 식탁 등 나와 다른 모든 존재에 대해 조금이라도 마음을 더 열 수 있기를 바란다.
* 썸네일 이미지 속 유물 : 충북 제천 점말동굴유적 출토품, 연세대학교 박물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