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기시대 유적의 보고서 작성법 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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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2023.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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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말 : 지난 시간까지 구석기유적의 퇴적환경에 대해 다루었다면 이번 달은 구석기유적 조사 이후의 대표적인 연구에 대해 다룹니다. 그 첫번째로 구석기유적의 보고서 작성법 개론이란 제목으로 김은정 선생님이 글을 써주셨습니다. 오랜 시간 구석기유적 조사와 보고서 작업을 해온 달인이죠. 진지한 소개 속에 담긴 고민의 흔적과 함께 구석기유적 보고서가 어떻게 탄생하는지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전곡리유적의 보고서들
김은정
(㈜라드피온 문화유산사업부)
‘고고학(考古學; 옛 것을 생각하는 학문)’의 가장 기본적인 실행 방법은 발굴이다. 연구 대상의 시대적·공간적·형태적 다양성을 막론하고 우선은 자료의 발굴이 전제된다는 측면에서 볼 때 사학(史學)과의 공통성이 인정된다. 반면 땅속에 파묻혀 잠들어 있던 유형의 물질 자료를 파내서 인간의 과거를 밝혀내는 것인가, 아니면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유무형의 자료를 찾아서 밝혀내는 것인가의 방법적 행위에는 차이가 있다. 전자에 해당하는 유물과 유적의 발굴이 고고학의 방법론적 출발점이라고 한다면, 후자의 사료 수집은 문헌사학의 출발점이다.
땅속으로부터 파내는 행위 그 자체만을 뜻하는 단어는 한자어로 ‘파낼 굴(掘)’이 있다. 이 掘(굴)자가 포함된 대표적인 단어에는 발굴(發掘)과 채굴(採掘) 등이 있다. 발굴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땅속에 파묻혀 있는 것을 파내는 것 혹은 그러한 작업을 이르는 단어이다. 채굴은 암석·토사나 땅속의 광물 등을 파내는 것으로 자원을 채취하는 행위 및 작업을 이른다. 이에 반해 掘자가 포함된 부정적인 의미의 단어로는 도굴(盜掘)이 있다. 도굴은 공유지나 타인 소유지 등을 권리나 허가 없이 몰래 파내 내부의 물품을 훔치는 행위이다. 대개 고분이나 묘지 등에서 문화유산을 도굴하는 행위가 대표적이기에 발굴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떠올리게 된다.
그럼 발굴과 도굴의 차이는 무엇일까. 땅속에 파묻힌 것을 파낸다는 행위 자체는 같다고 할 수 있겠으나 행위의 동기나 목적이 서로 전혀 다르다. 도굴은 개인의 이익과 욕심을 채우기 위해 권리나 허가 없이 불법적으로 일으키는 행위이다. 이에 반해 발굴은 땅 소유자와 국가로부터 정식 허가를 얻어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기 위해 혹은 공익을 위해 합법적 절차를 거쳐 조사하는 행위이다. 전자의 도굴은 불법적 범죄이기에 기록을 감출 수밖에 없다. 반면 발굴은 합법적 절차와 자금의 지원을 받아 이루어지는 조사이기에 그 경위와 내용을 낱낱이 기록하여 보고서를 작성한다. 곧 자세한 기록과 해석(고찰)을 담은 보고서가 발굴조사의 최종 결과물로 남아 후세에 전해지게 된다.
일반으로 고고학 발굴조사 보고서에는 어떠한 내용이 담기는가. 발굴조사가 이루어지기까지의 경위와 조사 목적, 누가 어떤 조사를 담당했는지에 대한 조사단 구성, 유적 위치에 대한 자연환경 및 인문환경 등의 사전 조사, 발굴조사 방법 및 조사내용, 마지막으로 발굴조사 결과에 대한 조사단의 해석을 담은 종합 고찰 등의 순서로 기록된다. 그리고 여기에 부록이 추가되는데, 다양한 자연과학 분석(연대측정, 지형 분석, 지층 퇴적분석, 석재분석, 고동물 및 고식물 분석 등) 데이터, 유물 목록 등이 수록되어 유적 해석의 근거 자료로 제시된다.
이중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발굴조사 내용이다. 발굴 과정에서 찾은 유구(공간 구조; 집자리·무덤·가마터·절터 등)와 유물(물질 자료; 토기·석기·철기 및 청동기·옥 등)에 대해 크기나 형태, 무늬 등 기초 데이터를 꼼꼼하게 기록하고, 관련 사진 및 도면 등을 함께 수록한다. 나아가 유구와 유물에 대한 기초 데이터의 통계 처리를 거쳐 어느 시기, 어떤 구조물에서 어떤 유물이 출토되었는지 등을 따져 해당 유적을 남긴 사람들의 문화 양상을 복원해 낸다. 바꿔 말하면 유적 내에서 출토한 유구와 유물에는 해당 시기를 살던 사람들 사이에 유행하던 양식이 남아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과거 특정 지층에서 드러난 구조물의 구축 방식, 물질 자료에 남아있는 형태 및 무늬 등에서 공통 요소 혹은 차별적 요소를 찾아내 비교함으로써 시기·공간·형태 등의 구체 내용을 밝혀 사람들의 생활상을 그려낼 수 있다.
그럼, 구석기시대 발굴조사 보고서도 이와 동일한 내용으로 구성될까. 큰 틀에서는 동일하다고 볼 수 있으나 구체적인 내용에서는 전개 방식이 조금 다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구석기시대 발굴조사에서 공간 구조에 해당하는 유구가 드러나는 일은 매우 드물다. 일부 산악 지역에 있던 동굴 혹은 바위그늘에 의존하여 살던 형태도 매우 드문 사례일 뿐이며, 들판에서 집자리 혹은 불땐자리(화덕자리)가 유구로써 조사된 사례도 극히 드물다. 구석기시대 발굴조사에서는 옛사람들이 살던 특정한 지층 속에서 오로지 뗀석기가 출토될 뿐이다. 따라서 뗀석기를 통해서, 그리고 뗀석기가 출토된 특정한 지층 퇴적을 통해서만 옛사람의 흔적을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구석기시대 발굴조사 보고서에는 지층 퇴적에 대한 분석과 뗀석기 분석이 주를 이룬다.
먼저 지층 퇴적분석의 내용을 살펴보자. 발굴조사에서 확보한 전체 지층 단면의 사진과 도면을 제시하며 체계적으로 구분한 퇴적 단위에 대해 기술한다. 여기에서는 퇴적층이 쌓인 시간적 순서뿐만 아니라 퇴적 원인과 성격, 퇴적 단위별 환경의 변화 양상도 종합하여 해석한다. 이 과정은 매우 전문적인 지식과 풍부한 경험이 뒷받침되어야 하기에 고지형 및 고지질 전문가와 공동조사한 자료를 종합하여 제시해 준다. 공동조사에서 얻은 퇴적물 자연과학분석의 결과는 부록에 수록하여 근거 자료를 제시해 준다. 또한 뗀석기가 출토된 지층(문화층)은 전체 지층 단면 중 어느 높이에 해당하는지, 해당 지층의 지질 환경은 어떠하며 당시 기후는 어떠했는지 등을 기술한다. 나아가 목탄(AMS-14C; 질량가속기를 이용한 방사성탄소 연대측정법) 혹은 토양(TL/OSL; 열발광/광자극발광 연대측정법)을 시료로 이용한 절대연대 측정 결과는 어떤 측정치로 나왔는지 등을 제시해 준다. 그 외에 토양 내 동물화석이나 꽃가루 분석, 목탄의 수종분석 등을 통해 동·식물 환경을 직·간접적으로 유추해 불 수 있다.
다음 뗀석기 분석은 보고서의 핵심 내용이다. 우선 뗀석기의 개별 관찰 및 분류 결과를 표로 정리하여 전체 유물 출토 양상과 규모를 제시해 준다. 이를 통해 해당 유적이 석기를 제작하던 곳인지, 아니면 석기를 사용하던 곳인지, 혹은 석재를 얻을 수 있는 산지였는지 등을 가늠할 수 있는 자료가 제시된다. 나아가서 뗀석기 제작에 어떤 돌감을 선택했는지, 재료가 된 돌은 산의 노두에서 가져왔는지 아니면 물가에서 가져왔는지, 유적의 주변에서 얻을 수 있는 돌인지 아니면 먼 거리에서 얻어야 하는 돌인지 등을 암종 및 암질 분석을 통해 밝혀낸다.
한편으로 해당 문화층이 뗀석기를 제작하던 곳이었다면 각각의 석기 조각들을 다시 하나의돌(원 재료 상태)로 되맞출 수 있음을 전제로 하여 시도한 석기 접합분석의 결과를 제시해 준다. 접합된 자료로 석기떼기 선후관계를 따져보면서 석기 제작 방법을 직접적으로 알 수 있다. 또한 각각 석기들의 출토지점을 표시한 후 접합 관계를 선으로 이어 봄으로써 석기의 공간 이동 양상이 드러나게 된다. 이를 통해 석기 제작 혹은 사용을 둘러싼 옛사람의 행동 흔적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이와 아울러 개별 석기의 정밀 관찰로 제작기술을 읽어냄으로써 해당 문화층에서는 어느 정도의 석기떼기 기술력이 있었는지를 복원해 낼 수 있다. 최근에는 뗀석기 표면을 현미경으로 정밀하게 관찰하여 쓴 자국 혹은 잡이 부착 흔적 등을 찾아, 실제 석기를 어떻게 사용했으며, 사용 대상이 동물이었는지 아니면 식물이었는지도 가늠할 수 있다.
구석기시대 보고서에서는 이렇듯 지층 퇴적분석과 뗀석기 분석 결과를 기록한다. 지층 퇴적분석에 의해 옛사람이 살던 시기의 기후 및 식생 등 자연환경을 유추해볼 수 있다. 한편 뗀석기 분석에 의해서는 옛사람이 어떤 도구를 제작 및 사용하고, 어떤 모습으로 어떤 삶의 모습을 이어갔을지 당시 생활상을 그려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