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 2004! 연천 구석기축제 현장운영자의 20년 전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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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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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구석기축제 체험부스 운영 모습
이상은(동아시아고고학연구소, 연천구석기축제 세계구석기 체험마당 현장운영자)
2002년 스무 살이 되어 대학에 입학한 창원 촌놈은 처음으로 느껴보는 자유분방함과 열정에 신이 나기는커녕 크게 위축되었었다. 요즘 말로 대문자 I인 나로서는 고향 근처 대학에 가길 원했지만 이 또한 내가 선택할 수 없었고 떠밀리듯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낯선 곳에 입학했다. 입학 후 접하게 된 익숙하지 않은 서울 말투와 공간 등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려웠다. 하루, 한 달, 1년, 2년 시간이 흐르며 어떻게든 적응한 척 연기했지만 크게 달라진 것 없이 2004년 5월 어린이날이 다가왔다. 당시 내가 다니던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는 매년 5월마다 전곡리축제에 참여하고 있었다. 2004년의 난 아주 자연스럽게 선배들이 시키는 대로 전체 OT에 참석하고 공강 시간마다 단과대 1층 연구실로 가서 조물조물 무언가를 만들었다. 그리고 5월 초 선후배들과 함께 버스에 올라탔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바로 연천 구석기 축제장이 있는 전곡리유적지였다.
전곡리유적에서 1978년 동아시아 최초로 아슐리안 주먹도끼가 발견된 이후 유적의 우수성과 지역사회와의 상생을 위해 1993년 첫 축제가 개최되었다. 축제를 기획한 배기동 당시 한양대 교수님과 선배를 따라 나도 그곳에 가게 된 것이다. 당시엔 지금과는 달리 맘카페도 SNS도 없던 시절에 입소문만으로 경기도 곳곳에서 축제를 체험하기 위해 아이들의 손을 잡은 부모님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의 목표는 오로지 선사 체험이었다. 축제가 시작되면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하루 종일 땡볕에 줄을 서가며 모든 체험 프로그램을 완주하고서야 뿌듯한 얼굴로 참여자들은 돌아갔다. 고고학을 인디아나 존스로 배운 우리 세대에게 전곡리유적과 구석기축제는 어디에서도 경험하기 힘든 전문적이면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프로그램이 있어 아이를 가진 부모라면 꼭 방문해야 하는 고고학 복합문화공간의 장이었다,
20여 년이 흘러 2024년의 연천구석기축제는 연천전곡리유적 외에도 세계의 다양한 선사유적들이 함께하고 있다. 나도 현장 운영자로서 이곳을 지키고 있다. 지난 2009년 스페인과 일본을 시작으로 호주, 미국, 칠레,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등 헤아리기도 어려울 만큼 많은 국가들과 기관들이 국제교류전이라는 이름으로 연천구석기축제를 다녀갔다. 올해도 일본, 대만, 스페인, 포르투갈, 오스트리아, 독일, 네덜란드 7개국이 각 국가의 대표적인 선사시대 유적과 이를 활용한 시연과 체험을 선보일 예정이다. 동아시아 끝 아주 작은 한반도에서 발견된 아슐리안 주먹도끼를 매개로 전 세계의 고고학 전문가들과 예술가, 지역주민들이 함께하는 축제는 이제 매년 10만 명 이상이 다녀가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문화유산활용 사례가 되었다.
과거의 우리는 연천전곡리유적의 세계적인 우수성을 알리고 문화재가 지역사회에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축제를 시작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지역사회 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하는 것은 물론 전 세계의 전문가들이 함께 교류하고 있다. 과거의 어느 날 한반도 연천에 도착한 전곡리안과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간 그 친구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적응해나간 모습들을 통해 이루어낸 인류의 발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이 되었다. 이런 발전의 과정들이 내가 연천을 떠나지 못하게 붙잡고 있는 것 같다. 아무것도 모르고 선후배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와 축제를 처음 만난 2004년, 현장 운영자가 되어 맞이하는 2024년 현재에 이어 앞으로의 2034년, 2044년 연천구석기축제는 어떻게 변화할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