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 어르신, 지천명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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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2024.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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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곡선사박물관 상설전시실 <인류 진화의 위대한 행진> 속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루시’
이서영(전곡선사박물관 학예연구사)
주말 당직 때 상설전시실을 순찰하다 보면 가끔 당혹스러운 얼굴을 마주할 때가 있다. 무서워서 떼쓰는 아이들의 손을 이끌며 “이거 다 가짜야, 안 움직여!”라고 다급히 외치는 부모님들이다. 영문도 모른 채 들어온 전시실에 털이 수북한, 사람도 아닌데 원숭이도 아닌 것들이 줄지어 서 있으니 꼬마 관람객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 간다. 나도 30살만 어렸다면 진작 도망갔을 것이다. 하지만 용기 있는 자만이 지식을 얻는 법. 크게 심호흡을 3번 하고 발걸음을 내디디면 수백만 년 인류 진화를 따라 걷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인류 진화의 위대한 행진>의 두 번째에 서 있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루시 Lucy’는 얼마 전까지 최초의 인류로 불린 가장 유명한 고인류 화석이다. 1974년 11월 24일 일요일 아침, 에티오피아 북동부 하다르 지역에서 고인류학자 도널드 조핸슨 Donald Johanson이 루시를 처음으로 발견하였다. 경사면의 퇴적물 사이에 튀어나온 팔꿈치 뼈의 모양과 크기로 보아 고인류의 것임을 직감한 그는 주변을 살펴 나머지 부분을 마저 수습하였다. 3주 간의 발굴 결과 머리, 아래턱, 갈비, 골반, 허벅지 등 사람의 207개 뼈 중 47개가 나왔다. 중복되는 부위가 없고 색, 풍화 정도, 크기가 일정해 한 개체에서 나온 것임이 틀림없었다. 그렇게 ‘인류의 어머니’ 루시가 318만 년을 지나 우리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루시는 금세 고인류학계의 스타가 되었고 연구자들은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통해 그녀의 모습을 복원해 냈다. 루시의 골반은 그녀가 여성임을 알려주었고, 대퇴골로 추정한 키는 약 1m이다. 또한 살짝 닳은 사랑니(세 번째 어금니)와 고관절, 사지의 뼈는 그녀가 완전한 성인이 된 후 죽었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가 두 발로 걸었다는 사실이다. 뇌 용량은 420cc에 불과하지만 두 발로 걸었던 루시는 ‘인류의 조건’을 바꾸어놓았다. 그녀의 등장으로 머리 크기보다는 직립보행 흔적의 여부가 최초의 인류가 될 수 있는 자격 요건이 된 셈이다. 그렇게 루시는 약 20년간 최초의 인류 타이틀을 거머쥐게 되었다. 하지만 인류 진화 연구도 끊임없이 진화하여 1990년대 후반부터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600~700만 년 전), 오로린 투게넨시스(600~700만 년 전),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440만 년 전) 등 강력한 경쟁자가 발견되었고 현재까지 최초의 인류 자리는 이들 중 하나로 좁혀지는 추세이다.
2011년 개관부터 상설전시실을 지키고 있는 루시가 발견 50주년을 맞았다. 318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첫 생일을 맞고 1974년 도널드와 함께 두 번째 생일을 맞았다면 올해로 50세가 된 셈이다. 루시보다 약 300만 살이나 어린(?) 공자님께서는 쉰에 하늘의 명을 깨달았다(知天命)고 한다. 어쩐지 오늘 그녀의 눈빛이 조금 달라 보인다. 루시 어르신의 지천명을 축하하며 올해가 가기 전 그간의 고마움을 담아 깨끗하게 목욕을 시켜드려야겠다. 그녀가 발견될 때 연구팀이 들었던, 그녀 이름의 유래가 된 노래 Beatles의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를 틀어놓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