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은 어떻게 우리에게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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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2024.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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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곡선사박물관 <석기이력서> 전시 속 가죽 가공 과정과 가죽 옷
김소영 (전곡선사박물관 학예연구사)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가죽은 짐승의 몸을 감싸고 있는 질긴 껍질과 그것을 가공해 만든 물건을 말하는 순우리말이다. 가죽을 만드는 기술은 인간이 환경에 적응해 발명한 최고의 기술 중 하나이다. 가죽의 가공은 중기 구석기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는 후기 구석기시대의 호모 사피엔스처럼 정교한 옷을 만들지는 못했다. 구석기시대 가죽을 다루는 기술은 호모 사피엔스에 의해 크게 발전했다. 호모 사피엔스의 극지방 진출과 빙하기의 도래는 이전 시기보다 생존 재료로서 가공된 가죽을 더 많이 필요하게 만들었다. 짐승의 껍데기를 부드럽게 만들고 바늘로 한 땀 한 땀 뜨는 작업은 무척 고된 일이었다.
이때 도구가 필요하다. 그중 대표적으로 쓰인 석기를 만들려면 우선 돌감을 구해야 한다. 흑요석처럼 멀리서 가지고 오기도 하지만 보통 유적 주변의 산, 계곡, 강에서 목적에 맞는 돌을 줍는다. 가죽 제작은 구석기기시대에도 전문화된 작업이었다. 따라서 이런 작 업을 지속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용도로 만들어진 도구가 필요했다. 저마다의 사용 목적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석기가 만들어진다. 가죽을 다루는 석기로는 무두질에 쓰인 밀개가 대표적이다. 무두질은 가죽 껍데기의 지방질을 섬유질로 바꾸는 작업으로 가죽 가공의 핵심 과정이다. 칼로 쓰는 돌날이나 격지도 빼놓을 수 없다. 나아가 만든 가 죽을 가공해 옷이나 덮개를 만들 때는 뼈바늘, 송곳, 뚜르개 등의 도구가 쓰인다.
사냥 등으로 얻은 짐승의 사체에서 가죽을 벗기면서 가죽의 가공이 시작된다. 가공하 지 않은 동물의 껍데기皮 skin·hide는 썩기 때문에 지방을 제거하여 가죽革leather으로 만들 어야 한다. 껍데기를 벗기면 살에 붙어있던 지방과 불순물이 있는 내피를 돌칼로 제거한 다. 가죽 가공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인 무두질 Tanning은 적시거나 말린 가죽을 밀개로 문 질러 부드럽게 하는 과정이다. 표면에 식물이나 으깬 나무껍질, 동물의 뇌나 골수, 황토 등을 발라 내구성 있고 부드러운 가죽을 만든다. 염색·훈연을 하거나 기름을 발라 방수 효과를 주기도 한다. 시베리아나 아프리카에서의 민족지 연구에 따르면 가죽을 구겨 발로 밟기도 하고, 앞니로 물고 손으로 당겨가며 가죽을 유연하게 하기도 한다. 여러 번의 고된 무두질이 끝나면 비로소 옷감이 된다.
이렇게 만든 가죽을 자를 때는 돌날이나 격지 같은 돌칼을 쓴다. 가죽과 가죽을 연결 하기 위해 송곳이나 뚜르개로 구멍을 뚫어 바늘로 바느질한다. 실을 꿸 수 있는 바늘귀 있는 바늘은 추위를 막기 위해 2겹 이상으로 꼼꼼하게 만든 옷이 늘어났음을 의미한다. 송곳과 송곳과 바늘은 정교한 재봉작업이 있었음을 보여주며 밀개와 더불어 가죽가공 도구세트로 공반한다. 가죽은 후기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생활에 중요한 재료였다. 집을 덮을 가죽, 옷과 신발을 만들 가죽 등 목적에 따라 다양한 특성의 가죽을 썼다.
이처럼 구석기시대의 어떤 누군가는 자연에 있는 가죽을 버리지 않고 썩기 전에 사용했고, 이후 인류는 오랜 시간 동안 시행착오를 겪으며 섬유화된 가죽을 만드는 기술을 발전시켰다. 우리는 흔히 박물관 속 진열장에 전시된 유물만이 전부라고 생각하지만, 그 석기 하나에는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다양한 행위가 극히 일부분만 드러나 있을 뿐이다. 가죽을 다루는 도구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가 지금까지도 쓰는 가죽이 구석기시대부터 시작된 엄청 오래된 기술의 집약체이고 다양한 도구가 쓰인 결과물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나를 둘러싼 것들의 가치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