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혁명 : 인류라고 정의한 거의 모든 것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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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2025.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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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춘택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여러 역사책에선 선사시대를 언급 정도만으로 넘어간다. 그러면서 문자, 그리고 문명과 국가가 등장하면서 진정한 인류 역사가 시작한 것처럼 쓴다. 그러나 선사는 역사 건너편 야만의 시대가 아니라 오늘의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깊은 역사(deep history)이다.
오늘날 세상에 사는 인류의 삶을 결정했던 가장 중요한 시기는 언제였을까? 어떤 이는 20세기 세계대전을 떠올릴 것이고, 다른 이는 대항해시대야말로 진정한 세계사의 출발이라 말할 수 있다. 나아가 고대 인도와 중국, 서아시아, 그리스에서 오늘날 종교와 철학의 전환이 이루어졌다고 하며 “축의 시대”를 논하기도 할 것이다. 제레드 다이아몬드(Jared Mason Diamond)는 <총, 균, 쇠>에서 식물재배와 동물사육, 곧 농업혁명의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오늘날 세계의 불균형을 풀어낸다.
모두 고개를 끄덕일 만한 진술이다. 그런데, 농업혁명이나 문명, 그리고 문자는 오늘날 80억 인류 모두에 해당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여전히 오늘날, 또 역사 속의 수많은 사람들이, 농사를 짓지 않고, 문자 문명의 우리 밖에 살고 있다.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아마존에는 수렵과 채집으로 삶을 이어가는 원주민이 있는 것이다. 이 사람들을 빼고 오늘날 세계를 말하고 싶진 않다.
극지 고위도에도, 고산지대에도, 사막에도 생물이 살지만, 이 모든 환경에 사는 단일한 생물종은 사람, 호모 사피엔스 밖에 없다. 그런데 이토록 다양한 환경에 적응한 것은 산업혁명 이후 과학기술의 발전 덕분이 아니다. 배를 타고 오스트레일리아까지, 그리고 높게 솟은 빙상이 녹아 생긴 통로나 해안을 타고 아메리카대륙까지 들어간 것은 놀랍게도 빙하시대 끝자락 수렵채집민이었다. 이렇게 보면 수렵채집민이 놓은 토대 위에서 역사의 수레바퀴가 굴렀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공통 토대”의 시기를 거쳤다. 그런 다음 12,000년 전 즈음 오늘날 환경이 도래하면서 어떤 곳에선 씨를 뿌리고 가꾸기도 하고, 얌전한 동물에게 먹이를 주고 잡아 축제를 벌였고, 수렵채집 생활을 수천 년 이어간 곳도 있었다. 공통 토대를 뒤이어 역사는 “다양화”의 시기로 들어간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호모 사피엔스는 후기 구석기시대 문화의 담당자였다. 높은 석기기술로 찌르개를 창에 매달고, 조개류에 구멍을 뚫어 몸을 치장하고, 얼굴에 칠하고, 풀과 피와 돌을 갈아 물감을 만들어 동굴 벽에 그림을 그리고, 어린아이 손을 잡고 산에 올라 깊은 동굴에 들어가 피리를 불고 춤을 추웠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똑같다.
호모 사피엔스는 먼 곳의 친구를 찾아와 수다를 떨고 선물도 교환했다. 후기 구석기시대 유적에서는 백두산 원산지 흑요석 유물이 드물지 않다. 중부지방에서 직선거리로만 500km에 이르는 곳에서 어떻게 흑요석을 들여왔을까? 부시멘으로 알려진 주호안시족은 200km에 이르는 흑사로(Hxaro)라는 교류체계를 갖고 있다. 수렵채집민은 이렇게 멀리까지 이동하고, 또 이동은 계획적으로 이루어진다. 이웃과 교류를 통해 정보와 물자를 얻고 혼인관계를 맺는다. 아프리카와 알래스카, 아마존 원주민이 서로 의사소통했을 리 만무하지만, 이런 특성은 오늘날 수렵채집민에게 널리 보인다. 거꾸로 이는 후기 구석기 수렵채집민의 유산이다.
거의 모든 수렵채집사회에서 부와 지위는 어느 한두 사람이나 가족에 집중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사냥을 잘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고기를 독점하지 않고 무리와 나누어 먹는다. 그렇게 평등한 사회를 지향하며 수만 년을 이어왔다. 무리는 아주 가까운 혈연으로만 구성하지 않는다. 오히려 협력할 대상을 찾아 15~30명의 무리를 구성하고, 주변 집단과 끊임없이 교류했다. 사실 그런 집단만이 오랫동안 살아남아 고고학 자료를 남겼다. 이 사람들의 삶은 오늘날 우리와 다를 바 없다. 이렇게 빙하시대 끝자락 수렵채집민은 오늘날 세계의 토대를 닦았다. 이 사람들은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었을 뿐 아니라 우리의 거울이기도 하다.
오늘날 교과서에 선사시대란 그저 한 시간 정도 분량의 가십거리처럼 취급되지만, 이렇게 오늘날 인류의 역사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선사에 대한 지식 없이는 인간을 이해할 수 없다. 한 사람의 성품과 삶에 어린 시절 경험과 기억은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빙하시대 수렵민은 마치 우리 인류의 잊힌 어린 시절과도 같다. 그렇게 오늘날 우리가 다시 새겨야 할 소중한 유산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