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상노대도 유적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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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23.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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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영 (전곡선사박물관 학예연구사)
우리나라 남해안에는 구석기시대 유적보다 유독 신석기시대 유적이 많다. 주로 강가에 인접한 구석기시대 유적과 달리 신석기시대 유적은 구릉이나 해안가에 집중되어 있다. 그중 통영 상노대도 유적은 구석기시대에서 신석기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을 담고 있어 중요하다. 상노대도 유적은 1978년 연세대학교와 동아대학교 박물관이 공동으로 발굴한 조개더미(패총) 유적이다. 이중 연세대학교 박물관이 발굴한 상리유적은 총 10개의 자연층으로 구성되어있는데, Ⅷ층을 제외한 모든 층에서 뗀석기가 나왔다. 신석기시대의 뗀석기 연구에 중요한 유적이지만, 발굴보고서(손보기 1982)와 석사학위논문(장호수 1981) 이후로 40년 동안 추가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박물관 학술팀은 지난 8월, 유적의 현재 모습을 확인하고 돌감 산지를 조사하기 위해 한반도를 가로질러 답사를 떠났다.
통영시에서 서남쪽으로 32km 떨어진 상노대도에 가기 위해서는 하루 2번 통영항에서 출발하는 여객선을 타야 한다. 2시간쯤 달렸을까, 생애 첫 배 여행의 설렘이 지루함으로 바뀔 즈음 상리마을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아담하고 조용한 섬이었다. 보고서의 지도를 살피며 유적의 위치를 가늠해보니 우연인지 운명인지 숙소 바로 뒤의 밭이 발굴지점(ㄱ칸)이었다. 유적은 총 10개의 자연층으로 구성되어있고 아래에서부터 Ⅹ~Ⅰ층으로 표기된다. 이 중에서 사람의 문화 활동이 드러난 층을 ‘문화층’이라고 하는데 이곳에는 총 4개의 문화층이 있다.
먼저 가장 옛날 사람들의 흔적이 남은 제 1문화층의 ㄱ과 ㄷ칸에서는 토기가, ㅁ칸에서는 석기가 많이 나왔다. 제 2,3문화층은 조개층으로 1문화층과는 유물의 성격이 많이 다르다. 특히 제 4문화층에서는 불 땐 흔적과 숯, 조개가 같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음식을 먹던 곳임을 알 수 있다. 유적 보고서에 감귤 농사를 위해 서둘러 발굴했다고 쓰여 있는데 지금도 당시 발굴지점에서는 모두 밭농사를 짓고 있었다. 땅을 살피며 유적(밭)을 천천히 둘러보니 농사를 위해 땅을 고르는 과정에서 드러난 석기와 토기, 조개 여러 점이 아주 쉽게 눈에 띄었다. 수습하여 자세히 살펴보고 사진으로 기록해두었다.
상노대도의 석기, 특히 잔손질 석기를 보면 석기를 잘 모르는 사람의 눈으로도 단숨에 알 수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아주 좋은 돌감으로 만들어진 석기라는 것이다. 유문암, 안산암 계열의 이 돌감을 섬 안의 어느 곳에서 구한 것일까? 아니면 주변의 다른 섬에서 가져온 것일까? 답을 찾기 위해 섬의 가장 높은 지점인 깃대봉으로 향했다. 군데군데 드러난 암반을 확인하여 비슷한 돌감이 있는지 찾아볼 작정이었다. 수풀이 우거진 8월이라 꼭대기까지는 가지 못했지만, 온몸의 물이 마르는 더위를 뚫고 여러 부분의 암반을 확인했다. 하지만 비슷한 돌감조차 찾지 못했다. 암석의 층이 비교적 잘 드러난 갯바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유적에서 나온 돌감으로 석기를 만들고 사용하는 실험을 하기 위해 돌감을 채집하려 했던 나로서는 난감할 노릇이었다. 잠깐이지만 배낭 가득 돌덩이를 지고 갈 생각에 부풀었었다.
하지만 살면서 첫술에 배가 불러본 적이 있던가. 한 번도 없었다. 더 많이 공부하고 날씨마저 알맞을 때 다시 오리라 다짐했다. 돌감 채집에는 실패했지만 섬마을에 온 김에 선사시대 사람들처럼 직접 물고기를 잡아보려고 수소문 끝에 낚싯대를 하나 얻었다. 하지만 구석기시대에 너무 길든 탓인지 현대식 낚싯대를 전혀 사용할 줄 몰랐다. 당연히 물고기는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참고로 상노대도 앞바다는 가두리 양식장이 많아 말 그대로 ‘물 반 고기 반’이라고 한다.
다음 날 이른 새벽, 섬을 떠나는 배에 몸을 실으며 1박 2일의 짧은 답사를 마쳤다. 우거진 숲이 조금은 힘이 빠지는 계절에 더 자세히 조사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