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요석 탐구 2 _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최애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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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23.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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눌러떼기로 만든 백두산 흑요석의 좀돌날과 몸돌이 되붙은 모습 (남양주 호평동 유적)
석기제작의 다양한 기술
김소영 (전곡선사박물관 학예연구사)
석기제작에서 '눌러떼기' 방법은 '직접떼기'에 비해 정교한 떼기가 가능해서 원하는 형태의 석기를 규칙적이고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눌러떼기' 방법의 등장은 보다 작고 정교해진 돌날인 좀돌날 생산이 증가한 것과 관련 있다. 지역이나 유적마다 차이는 있지만 돌날과 좀돌날 모두 길이가 너비보다 2배 이상이며, 대체로 너비를 기준으로 12mm 이상은 돌날, 작은 돌날을 의미하는 좀돌날 또는 잔돌날 microblade, 細石刃은 너비 7~12mm로 나눌 수 있다. 좀돌날은 뼈나 나무에 홈을 판 도구에 끼워 사용하다 날이 나가면 좀돌날만 교체하여 사용했으니 효율적이기도 했다. 주먹도끼처럼 초기의 석기는 하나의 석기가 여러 기능을 담당했다면, 좀돌날 복합석기는 전문적인 기능을 위해 만들고 손잡이를 장착하는 후기구석기시대의 발전된 도구 제작을 보여준다.
'눌러떼기' 방법이 언제 등장했는지는 많은 구석기 고고학자들의 고민이었다. 고전적인 연구에서는 약 4~3만 년 전 시베리아 남부지역에서 등장, 확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방법은 아시아를 거쳐 동쪽으로는 아메리카 대륙, 서쪽으로는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과 아프리카 등 전 세계로 확장해 약 2만 여 년 넘는 기간 동안 사용되었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에서는 유적의 연대, 출토상황과 석기제작 기법 등에 근거해 이 방법이 약 3~2만 5천 년 전 한국, 일본, 러시아 등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출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왜 흑요석 이야기를 하다가 눌러떼기라는 골치 아픈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바로 눌러떼기 등장에 흑요석이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눌러떼기 기법은 아무 돌감에나 적용할 수 는 없다. 누르는 힘이 일시에 뻗어나가기 때문에 돌 안에 불순물이 없고 입자가 곱고 균질해야 성공적으로 좀돌날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플린트 같은 일부 돌감은 열처리를 해 떼기에 유리하게 입자를 변형시키기도 한다.
흑요석은 이 '눌러떼기'에 의한 좀돌날 제작에 가장 적합한 돌감 중 하나이다. 실험고고학 연구에 따르면 눌러떼기가 손으로 잡고 시작되었다고 할 때, 흑요석은 최대 7~8cm의 좀돌날 생산이 가능한 돌감이다. 같은 조건에서 생산된 처트의 좀돌날이 최대 길이 3cm 인 것을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흑요석은 적은 노력으로 크기가 큰 좀돌날을 생산하는 경제적인 돌감인 셈이다.
이것이 당시 사람들이 흑요석을 선호한 이유였고, '눌러떼기'에 의한 좀돌날떼기의 등장 지역이 흑요석 산지와 관련 있는 이유이다. 동북아시아 지역의 '눌러떼기' 기법 등장 지역으로 거론된 한국, 일본, 러시아는 모두 흑요석의 대표 산지가 있는 곳이다. 러시아 극동지역에 Basaltic이나 Obluchie 고원이 있긴 하지만 이 지역의 가장 대표적인 흑요석 산지는 백두산과 홋카이도 시라타키 Shirataki 이다. 이 지역의 흑요석은 400km 넘게 떨어진 남한의 장흥이나 사할린과 아무르 강 지역에서 발견될 정도로 후기 구석기시대 광역 흑요석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한국의 구석기 유적에서도 흑요석이 나오는 유적이라면 '눌러떼기'로 만든 좀돌날이나 그 몸돌이 대체로 확인된다. 남한의 경우 대표 산지인 백두산과의 거리가 멀어 흑요석의 산지보다는 유통과 석기제작 연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반면 일본 홋카이도는 흑요석 산지와 이 산지에서 얻은 흑요석의 제작, 유통이 확인되는 지역이라 보다 다양한 연구가 가능하다. 홋카이도에서는 '눌러떼기'에 의한 좀돌날 제작 이전에도 흑요석이 석기제작의 돌감으로 사용되었지만 이 지역의 흑요석이 광범위하게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은 '눌러떼기'에 의한 좀돌날 제작(일명 유베츠 기법)이 채택된 시기와 일치한다.
다음 화에서는 백두산 흑요석 산지 연구 현황과 더불어 그 지역 조사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전곡선사박물관이 2018년부터 관심 가져온 일본의 흑요석 산지에 대해 알아보겠다.